1993년, 서울의 한 유명 경제연구소 대강당.
강의를 하는 사람은 응당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던 시절, 강의장을 가득 채운 엘리트 연구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가 등장한다.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는, 청중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칠판에 W를 적는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것이 WWW, 즉 웹의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로서는 허무맹랑하게 들릴 법한 이야기였다.
강연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하나둘 자리를 뜬다. 강의가 끝날 무렵, 앞자리에 앉은 몇몇 연구원을 제외하면 뒤쪽에는 단 두 명의 외부인만 남는다. 그중 한 명은 셔틀버스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지만, 다른 한 명, 당시 백수였던 청년은 진심으로 그 강연에 꽂혀 있었다. 그는 W를 믿었고, 주차장까지 강연자를 따라가며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W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주변에서는 백수 생활이 길어져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W에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이메일 서비스 중 하나를 만들게 되고, 비교적 이른 시점에 경제적 자유를 이룬 위치에 오르게 된다.
같은 강의를 들었지만 W를 알아보지 못한 또 다른 청년은 좌절한다. ‘나는 왜 미래를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세상은 W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0.1%의 창조자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보고, 타인의 통찰을 통해 W에 직간접적으로 올라탄 0.9%의 사람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이를 깨달은 그는 W의 시대에 모두가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을 찾는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휴대전화였다. 그는 당시 한국이동통신, 지금의 SK텔레콤에 집중 투자했고, 이 선택 역시 그를 경제적 자유로 이끌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박경철, 필명 ‘시골의사’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이른바 ‘아주대 W 강연’으로 알려진 박경철의 이야기다. 이미 WWW의 시대는 일상이 되었고, PC에서 모바일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W를 붙잡은 사람들 역시 크나큰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W를 놓친 우리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W 다음에 오는 X를 찾을 때다.
W 다음에 이어지는 문자 X는 많은 뜻을 품고 있다. 어떤 숫자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전혀 달라지는, 일종의 맥락 의존적 매개변수다. 그래서인지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관여한 여러 사업에 SpaceX, X처럼 X를 붙인다. 심지어 2020년에 태어난 그의 아들 애칭도 X다.
X는 미지수이자 가능성이고, 아직 규정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동시에 기존의 규칙을 지우고 다시 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정해진 답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답이 들어갈 자리를 미리 확보해두는 문자다. 그래서 X는 완성의 기호라기보다는,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과정의 기호에 가깝다.
나는 2024년부터 이 X가 무엇인지 고민해왔다. AI를 X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모두가 예측하고 체감하는 현상이 되었고, 범위도 너무 넓었다. 인공지능보다 좁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대중화되지는 않은 개념이어야 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X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붙들고 인사이트 있는 사업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 속 사건들을 살폈다. 그러다 조금씩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고, 최근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X는 세상 그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하는’ 기술이었다. 다시 말해, 어떤 Y라도 만들어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 기술.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바이브 코딩(추후에는 AI 에이전트)’과 ‘토큰화’다.
이 두 개념은 이미 기민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바이브 코딩은 쉽게 말해, 일상 언어로 디지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자연어 기반 코딩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개발자가 없어서, 혹은 코딩을 몰라서 서비스를 만들지 못한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끈기와 집요함만 있다면, 누구나 웹사이트나 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른 한 축은 ‘토큰화’다. 과거에는 일부만 소유할 수 있었던 강남의 프리미엄 부동산이나 테헤란로의 대형 빌딩조차도, 이제는 쪼개진 단위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자산이 잘게 나뉘고, 그 나뉜 조각을 토큰이라는 형태로 보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의 기반에는 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바이브 코딩’과 ‘토큰화’는 두 개의 축이다. 이 두 축 위에서 어떤 X를 찾아낼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두 축이 더 크게 의존하게 될 ‘에너지’에 주목할 수도 있고, 금을 캐는 사람에게 곡괭이를 팔았던 선조들의 방식처럼 교육이나 인프라에 집중할 수도 있다. 기존 산업과 결합한 새로운 X를 발견하는 길도 열려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W의 물결은 지나갔고, 이제 X의 물결이 일고 있다. 물결의 실체는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나의 특기를 살려, 나만의 방식으로 그 물결에 올라타는 것. 이제 서핑을 할 시간이다. 나의 서핑보드를 챙길 때다. X에 올라타자.
photo: Unsplash의Jen Theodore
회사 밖의 삶이 걱정이라면, 퇴사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56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