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5천원짜리 커피를 판다고?”
좋아하는 사업가 분들과 도쿄 인사이트 트립을 다녀온 직후였다. 함께 방문하려고 했던 카페 글리치(Glitch) 긴자점에 갔다가 수십 명이 서 있는 대기 줄을 보고, 안타깝지만 다른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인적으로 글리치 진보초점에서 좋은 기억이 있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귀국 후 며칠 지나 함께 여행을 갔던 대표님으로부터 국내에서도 글리치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콘텐츠를 공유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글리치 커피 ‘공식 쇼룸’이라는 소개였다. 필터 커피 가격은 2만 5천 원부터 7만 5천 원까지라고. 얼마나 맛있길래? 바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위치가 예상과 달랐다. 이런 가격대의 커피라면 청담이나 압구정처럼 고가 매장이 많은 곳, 혹은 성수처럼 트렌디한 가게가 모여 있는 곳일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이었다. 위치는 청량리역 근처. 이름은 슈퍼내추럴.
거리도 거리고, 청량리역에 갈 일이 쉽게 생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방문은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을 먹고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살이 에이는 추위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브랜드에 대한 멈출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가게 문을 여니 다른 카페에서 듣기 힘든 '헤비메탈(?)'류의 노래가 나를 반겼다. 의자 높이와 비슷한 높이의 테이블이 이곳이 '작업의 공간'이 아닌 '음미의 공간'이자 '대화의 공간'임을 알리는 듯 했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이 잇따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든 유일무이한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7만 5천 원짜리 글리치 드립 커피가 있었다면 마셔볼까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원두 위주로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저렴한 9,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멜론 같은 향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커피였다. 한 모금 마시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렇게 오들오들 떨며 다녀온 슈퍼내추럴에서 얻은, ‘가격’과 관련된 인사이트 세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스몰 브랜드를 컨설팅하다보면 열에 일곱 여덟은 이렇게 가격을 설정한다. 내가 팔고자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스터디한 뒤, 경쟁사 가격대의 ‘중간쯤’에 가격을 맞춘다. 혹은 유명 브랜드 가격을 보고 “나는 인지도가 없으니 조금 싸게 팔아야지” 하고 결론을 낸다. 이렇게 고난의 길을 택하게 된다.
자본이 부족한 스몰 브랜드는 규모가 큰 브랜드와 원가 경쟁이 되지 않는다. 많이 파는 브랜드는 같은 재료도 더 낮은 가격에 들여올 수 있고, 그 차이가 그대로 ‘남는 돈’이 된다. 남는 돈이 많아지면 광고든 콘텐츠든, 고객을 만나는 방법을 더 많이 시도할 수 있다. 반면 스몰 브랜드는 조금이라도 알려야 ‘팔까 말까’인데, 수익이 적으면 광고/콘텐츠/채널 운영에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결국 “안 보이는 브랜드”가 되기 쉽다.
슈퍼내추럴은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기준으로 드립 커피는 29,000원대부터 55,000원대까지였고, 아메리카노도 9,000원이었다. 체감상 글로벌 스페셜티 체인(블루보틀, 인텔리젠시아 등) 대비도 꽤 높은 편이다. 내부 손익은 알 수 없지만, 객단가와 1인당 기여이익(마진)이 높게 설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다른 개인 카페 대비 마케팅/운영 선택지가 더 넓어질 수 있다. (다만 짧게 살펴본 바로는, 현재 ‘대놓고 광고를 공격적으로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을수록, 가격은 곧 가치로 해석되곤 한다. 유명 브랜드보다 싼데 잘 모르는 브랜드면 많은 사람은 “싼게 비지떡이겠지”라고 인식한다. 출발부터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셈이다.
잘 모르는 동네에서 카페를 찾을 때 우리는 대개 지도 앱을 켠다. 후기 수, 평점 같은 지표도 강력하지만, 그 전에 메뉴 가격대만 봐도 사람 머릿속에는 카테고리 이미지가 빠르게 만들어진다. 아메리카노가 2천 원 전후면 ‘저가 커피’, 3~4천 원대면 ‘대중 프랜차이즈’, 5천 원 이상이면 ‘스페셜티 카페’ 같은 식으로 말이다. (정확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격이 프레임을 만든다는 사실은 대체로 유효하다.)
즉, “고품질을 최소 비용으로”가 고객에게 무조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보가 부족한 고객에게는 오히려 브랜드 포지션을 잘못 각인시킬 수 있다. 슈퍼내추럴은 가격만 봐도 ‘스페셜티’를 강하게 전제하게 만든다. ‘모두에게 애매한 어필’이 아니라, ‘원하는 타깃에게 구체적인 어필’이 되는 구조다.
애매한 가격은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마케팅의 골격인 4P(상품, 장소, 프로모션, 가격) 중 하나가 ‘Price(가격)’인데, 가격을 관심 유발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면 남들이 4개의 바퀴로 쌩쌩 달릴 때 3개의 바퀴로 위태롭게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슈퍼내추럴은 ‘충격적인 가격’만으로도 내 눈길을 잡아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격이 호기심을 만들어냈다. “도대체 어떤 커피이길래?”라는 질문을 가격 하나로 강제한 셈이다. 심지어 나처럼 청량리에 자주 갈 일이 없는 사람의 발길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가 스레드에 이 카페의 가격을 올렸을 때 댓글이 너무 빠르게, 또 격하게 달려서 댓글 옵션을 제한해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가격이 그 자체로 ‘대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물론 가격만 높다고 능사는 아니다. 높은 가격에 못 미치는 고객 경험은 재구매를 막고, ‘돈값 못 한다’는 낙인을 만든다. 그런데 내 경험 기준으로는, 이곳은 가격 대비 경험이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쪽에 있었다. 나는 수만 원대 드립 커피 대신 9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셨지만, “스타벅스의 2배 가격이더라도 이 정도 퀄리티면 가끔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물론 이것도 외부인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변수와 위기 속에서도 같은 자리에서 2021년부터 계속 고객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가격’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마칠까 한다.
"과거에는 ‘비싸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타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P.S. 공공재나 생필품처럼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품목의 가격 논리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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