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한번 도쿄의 디테일

by 캡선생

어쩌다 보니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도쿄를 간다(크리스마스 이후 부터 1월 초까지의 연말연시 휴무기간에는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니 피해야 한다) 왜 하고많은 곳 중에 도쿄였을까.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 일본인들은 치킨을 챙겨 먹는다고 하니, 평소에 붐비던 일식당이 한산할 것 같아 가보면 좋겠다.”


이 단순한 이유로 찾기 시작한 크리스마스의 도쿄는, 이제 맛집 이상의 영감을 주는 도시가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화려하다. 반대로, 처음엔 눈에 띄지 않는데 이상하게 자꾸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디테일에 강하다. 눈에 띄지 않는 성실함이나 배려, 오래 봐야 보이는 관점과 단단함 같은 것들 말이다.


나에게 도쿄는 후자에 해당한다. 얼핏 보기에는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남다름이 보인다. 내가 지겹도록 말해온 ‘도쿄의 디테일’을 이번 여행에서도 다시금 느꼈다.


1. 라멘집에서 재즈를 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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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워드의 <센세이셔널>에는 맛의 80%는 향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수치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이 말이 맞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20%는 오직 혀의 감각에만 달려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이는 음식의 모양뿐 아니라, 청각이 주는 영향력도 상당하다고 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샹송을 틀었을 때는 와인 주문량이 늘었고, 독일 음악을 틀었을 때는 맥주 주문량이 늘었다고 한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이 달라지고, 심지어 같은 음식이라도 맛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일본은 상당수의 음식점과 카페에서 재즈를 튼다. 버블경제 시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암묵적인 취향의 합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심지어 라멘집에서도 재즈를 틀어놓은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장르의 호불호를 떠나, 일상에서 늘 듣는 노래를 음식점에서도 들으면 묘하게 피곤할 때가 있다.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 때문일까. 반면 재즈는 가사가 없고, 자주 접하지 않아서인지 식사를 방해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음식에 더 집중하게 된다.


2. 누가 보지 않아도 하는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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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는 이런 순간이 자주 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다, 누군가 깊이 고민한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걷다 건물 입구를 봤는데, 벽에 달린 소방용 송수구에 산타 모자와 루돌프 머리띠가 트리와 크리스마스 양말과 함께 달려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전신주 옆에는 맥주잔 모양의 신호등이 달려 있었다. 카페에서 몽블랑을 주문했더니, 시럽으로 그릇 위에 트리와 별을 수줍게 그려서 내놓는다.


화장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처음 방문한 가게에서 와인을 마시다 문득 이곳이 몇 시에 여는지 궁금해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귀찮아서였는지 굳이 검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자,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EVERYDAY 16:00 OPEN’이라고 적힌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이런 디테일은 하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들다. 크게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숨은 디테일은 더 풍성해지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3. 비슷해 보여서 더 드러나는 차이

긴자에서 가장 화려한 백화점 중 하나인 긴자 식스를 방문했다. 꼭대기 층에 츠타야 서점이 있어, 긴자에 오면 늘 들르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중앙부를 천장까지 시원하게 트여 놓았다는 점이다. 입장하는 순간 공간이 주는 개방감이 크다. 그래서인지 이 중앙 공간에서 시기마다 다른 전시가 열린다.


이번에는 전광판에 디지털 게임처럼 달리는 사람들을 구현해 놓았다. 서울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서울스퀘어 벽에서 구현되는 줄리언 오피의 걷는 사람들의 디지털 아트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실제로도 같은 작가). 여러 곳에서 흔히 보는 형태라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이내 차이를 발견했다.


모든 캐릭터의 달리는 폼과 속도가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반복 영상이 아니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작은 경기처럼 느껴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디지털 아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텔에서 이용한 엘리베이터도 그랬다. 엘리베이터는 기다림이 즐겁 지 않은 공간이다. 운 좋게 바로 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짧은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는 달랐다. 아날로그 시계처럼 층이 바뀔 때마다 화살표가 딱, 딱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 짧은 기다림마저 ‘보는 맛’이 생겼다. 기다림이 아닌 기다려짐이 되는 엘리베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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