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강의나 모임에서 종종 이 질문을 꺼낸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이 럭셔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프리미엄의 문법으로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좋은 소재’, ‘높은 스펙’, ‘합리적인 근거’로 가격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럭셔리를 꿈꾸지만, 결국 프리미엄에서 멈춘다. 둘 사이의 간극이 ‘가격’이 아니라 ‘설명의 방식’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업가 니시노 아키히로는 럭셔리와 프리미엄의 간극을 ‘경합의 유무’로 설명한 다. 여기서 경합은 경쟁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가격을 기능·스펙·합리성 비교로 설득해야 하는 경쟁 구조 안에 있느냐에 가깝다. 프리미엄은 비교 가능한 세계에서 ‘상위 옵션’으로 설득한다. 반면 럭셔리는 비교의 프레임 자체에서 벗어나 ‘꿈·상징·믿음’으로 작동한다.
브랜딩 전문가 장 노엘 캐퍼러(Jean-Noël Kapferer)가 럭셔리를 종교에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창조자(창립자/디렉터)가 있고, 창조 신화(브랜드 서사)가 있으며, 성지 같은 플래그십 스토어가 존재한다. 럭셔리는 이를 통해 판단의 대상이기보다 믿음의 대상으로 굳어진다.
나는 이 차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다. 바로 낭비의 미학(Aesthetics of Waste)이다. 다만 여기서 낭비는 방만함이 아니다. 효율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비용이다. 또한 이 낭비는 반드시 통제된 공급, 즉 결핍과 결합해야 한다. 누구나 언제든 가질 수 있는 낭비는 사치가 아니라 방만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통제된 공급 위에서 펼쳐지는 정교한 낭비만이 고객의 인식 속에서 가격을 재구성한다.
모든 브랜드가 럭셔리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타깃 고객과 지향점에 따라 다른 문법이 더 맞는 경우도 있다. 다만 럭셔리의 ‘낭비의 미학’을 필요한 만큼만 ‘조금’ 가져오면, 스몰 브랜드도 이미지와 가격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럼 럭셔리의 어원부터 알아보자.
Luxury는 라틴어 계열의 luxuria에서 유래하며, 사치·과잉·방탕 같은 뉘앙스를 품고 출발한다. 즉 ‘필요 이상’이 전제다. 중요한 건 여기서의 과잉은 결함이 아니라 가치의 언어로 바뀐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설명 대신, 설명을 초월한 상징을 만든다. 그래서 럭셔리는 기능이 아니라 의미로 경쟁한다.
반대로 Premium은 라틴어 praemium(보상/대가)에서 왔고, 현대에 와서는 ‘표준 대비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추가금)’을 거쳐 ‘상위 옵션/상급 선택’이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프리미엄은 기본적으로 비교 가능한 세계에 있다. 표준이 있고, 그보다 한 단계 위가 프리미엄이다. 그래서 프리미엄은 대개 설명이 가능하다. 더 좋은 소재, 더 정교한 설계, 더 높은 성능, 더 나은 경험. ‘더 내고 더 받는다’는 교환의 논리가 성립한다.
이 관점에서 내가 말한 ‘낭비의 미학’은 어원적으로도 자연스럽다. 럭셔리는 원래부터 과잉의 개념을 품고 태어났고, 그 과잉을 얼마나 아름답게 정당화하느냐가 브랜드의 실력이다. 반대로 프리미엄이 과잉을 따라 하려고 하면 종종 애매해진다. 성능을 말해야 하는데 의미를 말하고, 의미를 말해야 하는데 성능을 말하는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는 생계를 위해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한계급(The Leisure Class)이 등장한다. 이들의 소비는 ‘필요를 채우는 소비’가 아니라, 남들이 알아보게 만드는 소비다. 베블런은 이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 불렀다. “낭비를 통해 지위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낭비 그 자체가 아니라, 낭비가 타인에게 ‘보이는 신호’로 기능할 때 지위가 된다는 점이다. 쓸데없어 보일수록 혹은 쓸데없음이 더 선명하게 보일수록 신호는 강해진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정원이다. 정원은 논이나 밭처럼 생존을 위한 산출물이 없다. 먹을거리도, 수익도 직접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잔디를 깎고, 나무를 다듬고, 계절마다 식재를 바꾸려면 돈과 시간이 꾸준히 들어간다. 더 중요한 건 그 비용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정원을 소유한다는 건 “나는 생산과 무관한 공간에 자원을 투입할 여유가 있고, 그 여유를 유지할 능력도 있다”는 신호가 된다. 다시 말해 낭비의 신호다.
[사진=젠틀몬스터(퀀텀 프로젝트 ‘Move Out’)]
한국에서 ‘글로벌 럭셔리 이미지’를 구현한 브랜드로 젠틀몬스터가 자주 언급된다. (여기서 말하는 럭셔리는 ‘카테고리/가격대’의 엄밀한 분류라기보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럭셔리처럼 작동하는 방식을 뜻한다.)
젠틀몬스터가 흥미로운 지점은, 많은 아이웨어 브랜드가 진열 효율과 판매 동선을 최적화할 때 정반대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매장에서 ‘상품을 보여주는 면적’을 줄이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치물과 장면에 공간을 내줬다. 그 결과 매장이 ‘안경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전시를 경험하는 곳’처럼 인식된다.
이 선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퀀텀 프로젝트다. 전시 설치물을 15~25일마다 주 기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은 한 번 꾸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갈아엎어야 유지되는 공간을 의미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운영 난도와 높은 비용 자체가 강력한 낭비로 기능한다. 이 낭비는 공간의 목적을 ‘판매’가 아니라 ‘경험’으로 재정의한다. 그래서 고객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관람객이 되고, 안경은 상품이 아닌 작품처럼 보이는 대상이 된다.
[사진=탬버린즈(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성수동 ‘탬버린즈’에서도 낭비의 문법을 반복한다. 1층부터 3층까지 일부 공간을 의도적으로 비워둔 듯한, 혹은 골조만 남겨 둔 듯한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은 ‘생경한 형태의 정원’이라는 테마로 소개되었다.
공간 구성부터가 일반적인 ‘층별 판매 효율’과 결이 다르다. 해외 디자인 매체에서는 해체적 접근을 통해 지상부를 비워두거나 골조 중심으로 남기고, 지하 공간을 핵심 경험으로 삼는 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팔기 위한 면적’보다 ‘느끼게 하는 장면’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논리의 뿌리는 같다. 이 지점에서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의 공간 경험은 젠틀몬스터와 같이 프리미엄의 문법보다 럭셔리의 문법에 가까워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반가사유상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 시선을 정리한 뒤에야 전시 공간에 도달하게 만든다. 여기서 더 중요한 포인트는 그 넓은 공간에 놓인 것이 단 두 점의 반가사유상뿐이라는 사실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사유의 방)]
비어있는 공간이 넓다는 것 자체가 두 점을 대단한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이 설계는 공간을 전시물로 빼곡히 채우는 전형적인 효율과 반대다. 정보를 빨리 전달하기보다 여백과 몰입을 위해 공간을 쓴다. 그래서 관람은 소비가 아니라 의식(ritual)이 된다. 대중적 관심은 작품의 가치가 변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를 느끼게 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폭발한다.
럭셔리의 문법을 빌려오는 것은 단순히 비싼 가격표를 붙이는 행위가 아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스몰 브랜드가 거대 자본의 럭셔리 하우스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어도, 그들이 가진 낭비의 미학을 전략적 도구로 삼는 것은 가능하다.
핵심은 어느 지점에서 비효율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모두가 속도와 효율을 쫓아 키오스크를 설치할 때,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며 사람의 정성을 투입하는 식이다. 모두가 상품의 기능에 집중할 때 상품을 둘러싼 의미나 구매 과정에 자원을 쓴다. 효율의 세계에서 사족이라 불리는 것들이 럭셔리의 세계에서는 비로소 가치가 된다.
이런 의도적인 낭비는 고객에게 기능 이상의 신호를 보낸다. 브랜드가 숫자와 스펙으로만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증거이자, 비교 경쟁의 장에서 벗어나 고유한 서사로 존재하겠다는 의지다. 낭비의 미학은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기술이 아니다. 브랜드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태도다.
결국 럭셔리 브랜딩이란 브랜드만의 가장 아름다운 낭비를 찾아내고, 그것을 고객이 발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 낭비가 고객의 인식 속에서 선명한 상징으로 남을 때, 브랜드는 비로소 프리미엄을 넘어 럭셔리의 문법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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