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만 일하는 것의 함정

받은 만큼만 일하세요. 회사는 여러분을 X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오게 된 분이 모임에서 열변을 토했다. 아직 회사에 대한 앙금이 크게 남았는지 그의 격앙된 목소리에서 수많은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분이 느낀 감정의 핵심은 '배신감'이었다. 회사가 본인의 단물만 빼먹고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받은 것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는 그것을 전혀 몰라주고 자신을 버렸다고. 그래서 너무나 후회한다고 말이다.

그가 억울해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적절한 보상만 받지 못해도 억울한 감정이 생기는데, 심지어 퇴사를 종용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다만 그로 인해 내린 결론은 많은 사람에게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그 자리에 있던 사회경험이 부족한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분의 격앙된 감정을 고려하여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의 생각은 속으로 삼켰다.

언제부턴가 "받은 만큼만 일하자"라는 것이 정답처럼 이야기되는 것 같다. 어떤 모임이건 간에 이러한 의견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은 크게 공감을 표했다. 단 한 번도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자매품으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자'와 '월급루팡'이 있는 것 같다)

직장인의 심리를 잘 반영한 모베러웍스의 슬로건. 사진 출처: 현대카드 DIVE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회사에 올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각자 알아서 은퇴 후의 삶을 일찍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라는 의견이 적극 지지를 받는 것도 결국에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이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나를 위해서' 받은 만큼만 일하자라는 주장이 사실은 '나에게 큰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최고의 투수가 터무니없는 계약 협상으로 2군 선수와 비슷한 연봉을 받았다고 치자. 그가 만약에 받은 만큼만 던진다면, 즉 본인이 던질 수 있는 속도보다 현저히 느린 시속 120km의 공만 꾸준히 던진다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속도까지밖에 던질 수 없는 선수가 될 수 있다. 받은 만큼만 던지다 보니, 받은 만큼밖에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선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극단적인 예시를 든 점 양해 바란다)

직장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받은 만큼만 일하다 보면 그만큼밖에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퇴사를 해서 이직을 하든 본인 사업을 하든 간에 받은 만큼만 일을 했던 몸에 깊숙이 배인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나의 성장을 방해하고 미래의 기회까지 앗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만을 위해 살라는 것도 아니다. 직종과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의 유한한 시간을 모두 회사에 갖다 바치는 것 또한 그리 영리한 선택은 아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할 일도 없는데 불필요하게 야근을 하거나, 본인의 삶을 망가뜨릴 정도로 과하게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서두에 언급한 분이 이러했다). 다만 회사와 계약된 근로시간 내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단순히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는 과정으로 보면 받은 만큼만 일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렸을 때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어른들의 말이 고루하게 들렸다. 때로는 이유 모를 반항심까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최선을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최선이 습관인 사람은 최선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그것도 매우 높은 확률로 말이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