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를 듣다 보면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우리나라의 향토민요를 짧게 들려주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방송된다. 이 방송을 들으려고 라디오를 켠 적은 없지만, 우연히 이 방송을 접하게 될 때면 마치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확실히 소리가 주는 울림이 있나 보다.
주말 오후 볼일을 마치고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 어떤 책이 나왔나 둘러보던 와중 내 눈길을 잡은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소리'가 아닌 '개소리'였다. 무슨 말인고하니 서점의 메인 가판대에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던 것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by 해리 G. 프랭크퍼트
제목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책은 각 잡고 읽으면 30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만한 짧은 분량이었다. 그 순간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은 ‘이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가 아닌 ‘사서 읽느냐 (서점에서) 서서 읽느냐’였다. 이런 책은 내용과 무관하게 그 주제만으로 소장 가치가 있다고 느껴 결국 사서 읽기로 했다.
일단 저자가 말하는 개소리에 대하여 알아보자. 멍멍!
1. 개소리(Bullshit)는 무엇인가?
저자는 개소리를 거짓말(Lie)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거짓말은 말 그대로 거짓이어야 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참과 거짓에 대한 구분 및 인지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거짓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라는 것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소극적으로 참을 생략하는 정도부터 적극적으로 거짓을 참으로 우기는 것까지 말이다. 개소리는 이와 다르게 본인이 참과 거짓에 대한 구분 및 인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하게 말하면 무지성 헛소리, 즉 개소리가 되는 것이다.
2. 그럼 왜 개소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드는 것 같다.
첫째,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가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 시민의 덕목처럼 되다 보니, 본인이 알지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개소리도 늘어난 것이다.
둘째,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좌절감에 개소리도 예전보다 더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에 모든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기조하에 그 누구도 개소리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개소리하기에 편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개소리에 대한 이렇게 진지한 고찰과 연구라니! 저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런데 개소리하면 안 되나?
진지한 고찰과 자기반성 그로부터 발생하는 의미 있는 소리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개똥도 약에 쓴다'라고 개소리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동창생들을 만나면 그야말로 개소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저자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개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개소리의 시간들이 팍팍한 삶에 윤활유 역할도 하지 않던가. 더 나아가서 이러한 개소리들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아이디어도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이러한 나의 의견은 저자의 기준에서 보면 개소리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뭐 어떤가? 오늘따라 학창 시절 친구들의 개소리가 그리워진다. 누가 뭐라건 우리의 (개)소리를 찾아서 오랜만에 연락을 해봐야겠다. 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