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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24. 2023

리더의 자질


나리타 공항행 기차 출발 6분 전에 가까스로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주쿠역은 미로처럼 복잡했고, 우리에게는 캐리어를 비롯해서 짐이 너무 많아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기차를 놓치면 수십만 원에 달하는 택시를 타야만 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본인을 따라오라고 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줄어드는데 기차를 타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끝이 없는 터널을 달리고 또 달리는 느낌이었다. '결국에는 기차를 놓칠 것 같은데 고맙다고 말하고 그만 뛸까'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그녀는 우리의 짐 일부를 대신 짊어지고 다시 선두에서 뛰기 시작했다. 전력질주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기차를 탈 수 있다는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1분가량 남은 시점에 에스컬레이터가 보였고 캐리어를 던지다시피 하면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차가 시야에 들어왔고 우리는 가까스로 승차하게 되었다. 역무원에게 아주 짧은 감사인사를 전하자마자 기차는 움직였다. 우리는 그대로 기차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6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역무원을 따라 달리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수십 번이나 떠올랐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못 탈 것 같은데?' '아 망했다'와 같은 생각이 심박동만큼이나 빠르게 머릿속을 울려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확신에 찬 역무원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기차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전력질주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꽤나 많다. '어차피 안될 것 같은데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너무 힘 빼지 말고 적당히 하자'와 같은 생각은 전염병처럼 빠르게 조직 내부에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리더마저 갈팡질팡하고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모든 팀원은 전력질주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모두가 전력질주하게 만드는 것은 리더의 확신, 다른 말로 명확한 비전에 달려있다.


물론 리더가 확신만 한다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무원이 그러듯 리더는 본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의 고충을 살피고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본인도 달리느라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짐 때문에 늦게 달린다는 것을 확인한 역무원은 지체 없이 짐을 들어주었다. 의 질주는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의 기록으로 결정되는 개인전이 아닌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의 기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스피드스케이트 팀추월과 같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팀추월 경기.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처럼 리더는 끊임없이 조직원의 고충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충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시스템적으로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요일 오전 7시에 고객이기는 하지만 타인의 일을 본인일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리더의 가장 핵심적인 자질을 엿볼 수 있었다. 직업정신을 말이다.


그녀가 이 글을 볼 확률은 매우 낮지만, 글로써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Photo by Steven Lelh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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