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많은 독서모임을 참여했다. 지정된 책을읽고 대화를 나누는 '지정독서모임', 본인이 원하는 책을 읽고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자유독서모임', 영화와 책 혹은 음악과 책 같이 다른 형태의 콘텐츠와 책을 연계해서 이야기하는 '연계독서모임' 등등. 횟수를 떠나서 형태에 있어서도 다양한 독서모임을 참여자로서 때로는 모임장으로서 경험했다.
모든 형태의 독서모임은 그 나름의 호불호가 있다. 개인의 취향과 기질 그리고 모임에 참여하는 목적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하나 있다. 모임에 어울리는 사람만 받는 것이다. 어떠한 모임인지를 사전에 분명히 알리고 취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트레바리처럼 독후감을 미리 제출하지 않으면 돈을 내도 참여를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래야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비건 레스토랑에 방문해서 큰 실망과 분노를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이처럼 개개인의 취향/기질/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독서모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거의 모두를 만족시키는 형태의 독서모임이 있다. 햇수로 8년 동안 독서모임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비밀이다. 바로 '독서하지 않아도 되는 독서모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독서를 위한 모임인데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리고 이러한 모임이 가장 인기가 좋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먼저 독서모임에는 '책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책을 즐겨 읽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독서가 좋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독서가 아직은 몸에 익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독서' 없이 '독서'를 경험할 수 있는 '독서하지 않아도 되는 독서모임'은 늘 인기가 있다.
두 번째로 독서광의 숨은 니즈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이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책을 원하는 만큼 읽지 못한다. 읽고 싶은 책의 번역서가 없어서.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분량이 너무 많아서 등등.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다. 누군가가 대신 책의 내용을 요약정리해 주었으면 하는 니즈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1,0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나,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난해한 철학자의 책은 더더욱.
이 사실을 깨닫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모임을 만들면 대박 나지 않을까? 분량이 너무 많거나 어려운 책을 대신 요약정리해 주고, 그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려운 책을 해독해 준다'는 콘셉트의 '난독해독클럽'은 그렇게 탄생했다.
'난독해독클럽'은 모임을 열 때마다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정원이 20명 남짓으로 적기는 했지만,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매진속도로 인해 미처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은 추가 모임 개설을 요청해 왔다. 때에 따라서는 추가 반을 개설하며 모임을 진행했다.
이 모임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요약정리된 내용을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책을 읽는 것과 진배없는 경험을 하는 만족감도 한몫했다.
<난독해독클럽>. 사진 출처: 아그레아블
참여자의 만족도도 높고 나도 보람이 컸으나 지속적으로 진행하기는 힘들었다. 책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것은 꽤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했기에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해나가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이러한 형태의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작가 한 명의 다양한 책을 미술 작품 해설하듯 간략하게 요약/설명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북 도슨트> 모임이다.
<북 도슨트>. 사진 출처: 남의집
이 모임을 진행하면서 다시금 느꼈다. 확실히 독서가 배제된 독서모임은 만족도가 상당히 높음을.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고생한 만큼 참여자가 만족할 수 있다면 '독서'없는 '독서'모임을 종종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