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에 제목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은 비싸야만 한다'라고 꼭 써야만 했다. 에둘러서 말하기보다 직접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모임장의 마음가짐
내가 진행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모임 이후에 참여자가 아닌 모임장으로 활동하곤 한다. 모임 때마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 보라는 나의 말에 자극을 받으신 건지, 아니면 그러한 분들만 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말이다.
최근에 진행했던 모임에 참여한 분도 그러했다. 그분은 몇 번 무료로 모임을 진행해 보았는데, 처음으로 유료 모임을 진행할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받고 모임을 진행하려다 보니 부담감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유료 모임을 처음으로 진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 증상(?)이다. 본인이 진행하는 모임이 돈을 받아도 되는 퀄리티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돈을 받음으로써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무료 모임을 진행하는 사람은 일종의 자원봉사처럼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느낌으로 모임을 대하지만 돈을 받는 순간 180도 바뀐다. 이제는 봉사가 아니라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갑'에서 '을'로 위치가 변하고 그에 따라 모임을 바라보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한다.
대부분의 경우 받는 돈에 비례하여 부담감과 책임감은 늘어나게 되어있다(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1회에 1만 원 내외의 모임을 진행하는 것과 10만 원 내외의 모임을 진행하는 것의 차이를.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피하면서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가격을 올리기보다 참여자를 늘리는 방법을 택하곤 한다. 어찌 되었든 받는 돈의 총액을 늘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에는 반대하는 편이다. 강의가 아닌 모임이라면 참여자가 늘면 늘수록 대화의 깊이가 얕아질 수밖에 없다. 한정된 시간에 말해야 하는 참여자가 늘면 이야기를 중간에 끊거나 혹은 말 한마디 못하는 참여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임장이 택해야 하는 길은 참여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닌 가격을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부담감은 더욱더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모임의 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2. 참여자의 마음가짐
무료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분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참여자들이 지각은 물론이고 무단결석을 습관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참여자가 모두 나오지 않아서 본인 시간만 버렸다고도 했다. 그분께 딱 한 마디만 했다.
"돈을 받고 하세요."
한 번 생각해 보자. 10만 원을 주고 티켓을 구매한 콘서트와 무료 콘서트가 갑자기 동일한 날에 열리게 된다면 어디에 갈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10만 원을 지불한 콘서트에 갈 것이다.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인간의 심리다. 돈을 지불한 만큼 그것에 대한 애착 혹은 집착(?)이 발생하는 것이다. '높은 비용'은 참여자의 마음가짐을 달리 만든다.
높은 가격은 높은 허들로서도 작용한다. "심심한데 그냥 한 번 신청해 볼까"라는 생각으로는 비싼 모임을 신청하기 힘들다.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모임의 취지에 맞는 사람만 신청하게 된다. 다른 말로 모임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걸맞은 사람들로만 모임이 구성되는 것이다. 이는 높은 만족도로 이어지게 된다.
수많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모임 플랫폼 대표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말한 한 가지 공통점은 가격이 높은 모임일수록 흔히 말하는 빌런(villian: 악당이라는 뜻으로 '진상'이라는 개념과 비슷하게 쓰임)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위에서 말한 높은 가격이 만들어내는 높은 허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빌런은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모임 취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주로 빌런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3. 모임 생태계
하루에 5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5시간 공부하는 학생과 10시간 온전히 공부하는 학생 중 누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둘까? 타고난 지능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지 않는 이상 10시간 공부하는 학생일 것이다. 뜬금없이 학생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직업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만 해도 생계가 유지되는 직업과 N잡을 해야만 생계유지가 가능한 직업처럼 말이다.
지금은 많은 청소년이 꿈꾸는 '래퍼'도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돈 벌기 힘든 직업이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래퍼들조차 부업을 하면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야 했다. 힙합음악을 한다는 것, 랩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생계유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힙합 1,2세대는 래퍼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더콰이엇의 <Bentley>에 나오는 가사다.
난 랩과 돈의 간격을 좁힌 놈
랩이라는 행위, 래퍼라는 직업만으로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그것을 넘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더콰이엇은 증명했다. 이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힙합에 뛰어들었고, 힙합 생태계는 예전보다 더욱 풍성해졌다. (물론 과거가 더 좋았다고 느끼는 분도 있으리라 본다)
이처럼 모임 생태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모임장은 취미와 직업 사이 애매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 본업이 있고 취미 겸 용돈벌이 겸으로 모임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임장을 본업으로 삼았을 때 나올 수 있는 퀄리티가 나오기 힘들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생태계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있다. 모임장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모임 생태계도 힙합처럼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모임장의 마음가짐', '참여자의 마음가짐', '모임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돈이 필요 없다면 무엇보다 좋을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적극 지지하겠다. 다만 그러한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모임은 비싸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싼'이 아닌 '값진' 모임이니까 말이다.
P.S. 물론 무료로써 존재해야만 하는 모임도 있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유료 모임에 국한된다는 점 참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