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스에서 교통권을 팔 줄이야.
파리 숙소에서 남프랑스 니스까지 오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2시간 소요되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과 리옹역에서 6시간 소요되는 탈리스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비행기를 택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는 짐 무게 제한이 많은 터라 짐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거두절미하고 탈리스 기차를 선택하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탈리스 기차 안에서 두 딸아이는 엄마표 유럽 워크북을 꼼꼼하게 읽어가며 프랑스 파리에서의 추억을 정리하며 되새김질하였다. 프랑스의 남쪽, 니스는 또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까?
니스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화가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 이틀 동안 머물 예정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니스 역에 도착하자마자 니스에서 머물 기간에 맞는 교통권을 구매하려고 티켓발권기 앞에 섰지만 짧은 일정이라 교통권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발권기 앞에서 결정장애를 앓았다. 역에서 아니면 교통권 구매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에 우선 구매하는 걸로 선택했고, 이 티켓은 후에 나를 '당근'하게 만든다.
파리 숙소에서 니스 숙소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9시간 넘게 걸렸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우리는 밀려오는 허기와 함께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느린 대응으로 짜증지수는 높아질 데로 높아졌다. 'I'm coming' 메시지를 남기고 40분을 넘게 기다리게 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사진빨에 가까운 반전 실물로 한 번 더 놀라게 했는데,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자 하니 사과받기는 커녕 우선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숙소 안내를 받고 짐을 내동댕이 치듯이 던져놓고 돌도 씹어먹을 수 있는 전투력으로 나섰던 세 마리의 하이에나 앞에 나타난 니스의 저녁, 매정하게 무슨 색이라고 딱 잘라 정할 수 없는 오묘한 핑크빛 노을이 우리 앞에서 일렁이는데 오직 우리와 노을만 남은 것 같이 시간이 멈췄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허기도 짜증도 무색하게 사르륵사르륵 녹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멍하게 있는데 배꼽시계가 정신 차리라고 요란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이나 서있었는데 버스 하나 보이지 않고 심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30분을 기다리고 있던 찰나, 지나가던 행인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파업으로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오 마이 갓! 우선 가까운 맥도널드에서 허기를 채우고 니스의 세숫대야 파스타는 꼭 먹어봐야겠다.
니스는 소도시로 시티 맵퍼도 작동하지 않아 플랜 B 구글맵을 구동시켜서 니스의 맛집을 향해 다소 먼 거리지만 걷기 시작했다.
니스의 매직 아워가 지나고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세 모녀가 걷던 중 만난 공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뛰기 시작한다. 공원의 방방이가 찢어질 듯 흥분해서 점핑하는 아이들 뒤에 대관람차의 조명 불빛이 빼꼼 보인다. 얘들아 우리는 세숫대야 파스타를 먹어야 한단다. 서두르자.
니스의 해산물로 만든 세숫대야만 한 크기의 해물 파스타는 우리의 먹성에 보답하듯 양이 어마어마해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식사를 하고 나와 니스 기념 마그넷을 사기 위해 거리를 걷던 중 만난 버스킹 연주하는 아저씨. 아련한 음악소리가 니스의 밤거리를 수놓을 때 아름답지만 너무 슬펐다. 버스파업으로 우리는 걸어야 했고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에 부담이 한껏 차올랐다.
후에 니스 버스 파업으로 말미암아 니스 교통권은 남게 되었고,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공항에서 시간이 남아 공항에서 교통권 발권하는 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통권 발권 담당자는 티켓 머신에서 구매한 교통권은 자신에게 구매하지 않은 것이기에 환불해줄 수 없으니 교통권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팔아라고 하는 것이다.
WHAT? 교통권을 팔아보라고?
한국말이 절로 나오는 당황스러운 답변에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공항의 교통권 판매처에는 분명 니스 교통권이 필요한 사람이 올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암표를 팔듯 교통권을 팔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시간도 남았고 한번 기다려 보자 싶은 찰나에 교통권을 사려는 한 무리가 아까 그 당황스러운 직원에게 가서 교통권을 구매하려고 한다. 그때 그 직원이 우리 쪽을 가리키며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기웃기웃거리던 우리에게 그 무리가 오지 않는가?
얼굴을 보아하니 중국 사람 아니면 얼핏 보면 홍콩 사람 같아 보이던 그 무리 중 한 명이 교통권을 사고 싶다고 말을 건넨다. 당근 하는 자, 당근 할 자의 행동만 보아도 안다고 했던가?
당근 하시겠어요? (Do you wanna buy a ticket?)
이렇게 직원의 도움으로 성사된 니스의 교통권 당근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고, 공항 플랫폼으로 가려던 찰나 아까 교통권을 구매한 무리와 또 마주쳤는데 반전은 한국말로 서로 웃고 떠들고 있던 가족이 아니었던가? 서로 중국인인 듯 의심스러워하며 영어로 대화했던 상황이 너무 웃겼다. 나는 가방에 있던 귤을 꺼내어 그 가족에게 다가가 건넨다.
안녕하세요. 아까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 한국분이셨네요. (당황한 기색) 교통권은 잘 쓰겠습니다.
니스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하나 더 저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