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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Jul 21. 2021

여행이 순조로우면 재미없지.

런던에서 만난 은인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게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_김영하 여행의 이유에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환상적인 무대 연출로 런던 뮤지컬의 진수를 보여준 마틸다가 막을 내리고, 나의 마음도 어둑어둑해진 런던의 거리와 같이 어두워졌다. 손톱만 한 유심칩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우리 여행에 미치는 그 파장은 실로 컸고, 인터넷이 안되면 모든 게 마비가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최대한 담담한 척)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떻게든 안전하게 숙소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저 멀리 Five guys의 빨간 간판이 낯설지 않았다. 여행책에서 맛집 추천으로 많이 봤던 집이었다. 맛집을 따질 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대충 보아하니 햄버거 패티부터 토핑까지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수제 햄버거집이었고, 어느 정도 크기를 시켜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그럴싸하게 주문하고 돌아서는 순간,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보였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혹시 한국분이시냐고 물어보니 영국 워홀러로 일하는 한국인 학생이었다. 뭔가 튼튼한 동아줄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근처에서 유심칩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하게 위치를 검색하여 아주 가까운 곳의 Three 유심 매장을 찾아서 가는 방법까지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었으며 혹시라도 모르면 다시 매장으로 오면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한국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는지, 입이 짧은 둘째는 안 먹던 햄버거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유럽에 있는 동안 5~6번을 방문할 정도로 사실 Five guys햄버거는 아직도 생각나는 맛이다) 유심 매장을 들리기 전 유럽 화장실은 유료이니 Five guys 무료 화장실 가는 것도 잊지 않고 챙겼다.  

 

 아르바이트생이 알려준 Three 유심 매장에서 무제한 유심칩으로 구매해서 장착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유심칩은 현지 구매 시 프로모션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 한국에서 구매한 것보다 금액이 저렴한 경우도 있다) 런던에서 만난 그 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Five guys 매장을 들렀고, 아이들은 배꼽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세 모녀의 아찔한 런던 여행이 그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또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어찌나 고마웠던지 1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아르바이트생 얼굴이 생생하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건 그렇고 잃어버린 유심칩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은가? 숙소로 돌아가면서 머릿속으로 되감기를 돌려보니, 런던 숙소 마루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에서 유심칩을 끼우던 중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단속하다가 떨어진 것 같고, 비염이 있는 딸아이를 위해 유심칩이 떨어져 있던 카펫을 돌돌돌 말아 구석으로 고이고이 모셔놓는 바람에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로 돌아와서 카펫을 풀어보니 그 속에서 반짝이던 그 녀석! 그 녀석이 참, 얄밉기도 하지만 잊지 못할 여행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는 바람에 딸아이들과 지금까지 두고두고 이야기꽃을 피우게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여행은 언제나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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