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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Oct 03. 2021

스페인 음식 얼마나 맛있게요?

(ft. 저는 가이드가 아닙니다만, 고객님?!)


아빠가 도착하면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바르셀로나 숙소 침대 머리맡에 둔 딸아이 편지

 생뚱맞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엄마 사람은 굉장히 독립적인 여성이다. 뭐 남편 없이 유럽 미술여행을 한답시고 간 크게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두 딸아이를 데리고 출국길에 올랐던 그 순간부터 이미 예상한 대목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간 크고 무모한 나의 결정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태어주는 남편 덕이 컸을지도 모른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십 년 전 함께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여행 이후로 이번 유럽 미술여행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12일간 같이 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딸아이들은 아빠와의 한 달만의 상봉에 기대와 설렘이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꽃보다 한식
남편보다 라면이었다.


남편이 공수해온 한국음식 한 보따리

 도착한 남편의 큰 캐리어 하나를 열었더니 즉석밥, 라면, 김자반, 비비고 친구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칼칼한 라면봉지를 보는 것만으로 런던-암스테르담-파리-니스의 느끼함이 노곤한 목덜미를 타고 쑥 하고 내려간다. 


얘들아 오늘은 파티다! 에헤라디야~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자면, 남편이 유럽 미술여행에 후발대로 합류함으로써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조금은 편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고 안전에 대한 든든함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시차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보이지 않는 가이드 깃발에 딸아이들과 함께 따라오는 여행 고객님이자 짐 지옥에서 짐꾼 역할을 도맡다 하셨다 첨언한다.


저는 가이드가 아닙니다만, 고객님?!

 스페인에서 남편 덕분에 한국음식을 드디어 맛보게 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 먹을 비상식량을 남겨야 하기에 아껴먹어야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이 한국음식 없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나라였을 만큼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았다. 뜨거운 태양과 정열적인 사람들의 모습처럼 음식을 먹는 순간 혀끝을 자극하며 본연의 맛을 확실하게 주장하는 스페인 음식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La Rita (C/ d'Aragó, 279, 08009 Barcelona, Spain)의 빠에야

 빠에야는 넓은 빠에야 팬에 쌀과 신선한 해산물, 야채 등을 넣고 볶은 뒤 물을 넣고 끓여서 익히는 요리로 스페인이 유럽에서 쌀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힐 만큼 대표적인 음식이다.

바르셀로나 La Rita
완전체를 위하여 치얼스!

 완전체로 뭉친 기념으로 즐긴 La Rita에서의 점심식사는 레스토랑의 매니저 어느 누구도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온갖 바디랭귀지와 그림으로 주문을 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스페인의 대표음식 빠에야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느끼함을 제대로 잡아주는 음식이었고, 스페인 또한 음식이 매우 짠 편이라서 주문 시에 소금을 적게 넣어달라 부탁하기 위해 파파고를 살포시 꺼냈다.


노 살 뽀르 빠보르 (소금을 넣지 마세요. 뿌려 먹을 셈)



Xurreria (Carrer dels Banys Nous, 8, 08002 Barcelona, Spain)의 추로스

 스페인에서는 진한 초코 라테 한잔에 곁들여 아침식사로 추로스를 먹기도 한다는데 개인적으로 불호이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관람 후 아이들 간식을 주기 위해 츄레리아 앞에 줄을 섰다.

바르셀로나 츄레리아

 초코시럽에 쿡 찍어 한 입 배어문 추로스에서 퍼져 나오는 시나몬 향과 바삭함은 놀이공원에서 맛본 추로스와는 차원이 달랐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몇 분도 안돼 바닥을 보인 추로스 박스에 리필을 하였고 사장님을 향해 쌍 따봉을 날렸다.

마드리드 츄레리아
추로스 튀기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는 마드리드의 츄레리아



BAR ZODIACO (Carrer de Blai, 39, 08004 Barcelona, Spain)의 핀초스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 한잔 곁들여서 간단하게 먹는 소량의 음식을 타파스(Tapas)라고 하는데 한입 크기의 빵 위에 햄, 새우, 치즈 등의 다양한 식재료를 얹어서 꼬지로 꽂아 먹는데 바스크 지방에서는 핀초스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호안 미로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던 골목에 위치한 핀쵸스 음식점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한몫했고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먹었던 핀초스는 각양각색의 식재료 본연의 향을 뽐내며 입안에서 춤췄다. 



Rotonda de Pacifico (Av. de la Ciudad de Barcelona, 81, 28007 Madrid, Spain)의 상그리아와 감바스 알 아히요

 레드와인에 다양한 과일과 과즙을 넣어 만든 스페인 전통음료인 상그리아는 혼자 아이 둘을 케어할 때는 맥주 한 캔에도 여유롭지 못했던 내가 남편과 함께 낮술을 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상그리아
감바스 알 아히요
오징어 먹물 빠에야

 단순히 마드리드 에어비앤비 숙소 근처 맛집이라고 검색하고 찾아간 식당은 결혼식 뒤풀이 뷔페식당 같은 아우라를 풍겼고, 감바스와 오징어 먹물 빠에야와 함께한 낮술 상그리아를 맛보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나의 등짝이 서늘하고 허전하다.


 나의 배낭이 사라졌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두고 온 거지. 낮술에 정신은 안드로메다행 티켓을 끊었고, 음식점 의자 밑에 가지런히 가방을 두고 오는 실수를 범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 음식점이라서 남편이 우사인 볼트 저리 가라 달려서 찾아온 배낭에 우리 모두 허탈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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