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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Oct 20. 2021

평균이 뭐죠?

사람들은 상상력이 참 좋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알죠. 먼 옛날부터 그랬어요. 신화나 마법 같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고 그걸 믿잖아요. 더 신기한 건 그 상상들을 현실로 구현해낸다는 거예요. 자동차나 비행기는 이제는 너무 익숙한 발명품들이고,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그럭저럭 대화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진짜 대단해요.


모순적인 건, 상상력이 그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약간 고장 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예요. 상상력이 너무 좋아서일까요? 어떤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매우 놀라워합니다. 놀라워하는 건 그렇다고 쳐요. 가끔은 거부하기까지 하더라고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이 한강 가까이에 사는 서울시민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당신은 오래간만에 산책을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기분 좋게 걷고 있는 당신 앞에 벤치에 앉은 이성애 커플이 보입니다. 지금이에요! 그 장면에서 상상을 멈춰봅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묘사해 보세요.


남자와 여자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있을 확률이 높겠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고 수줍음 어린 침묵에 감싸여 누가 먼저 말을 걸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기댈지도, 잠깐! 바로 그 지점입니다.


고개를 기대거나 말거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상상 속 여자는 아마도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 수 있을 만큼 키가 작을 겁니다. 그게 보통의 자연스러운 이성애 커플의 이미지니까요. 자, 그러면 여기서 변화를 한 번 줘 봅시다. 여자의 키를 늘려보세요. 기왕 늘리는 거 한 180cm 정도로요. 어떤가요?


사실 별로 답변을 듣고 싶어서 질문을 던진 건 아니에요. 왜냐면 제가 180cm거든요.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대상에게 쉽게 투영하곤 하죠. 여자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외양이 있는 것처럼요. 저 또한 여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몇몇 단어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습게도 제가 떠올린 단어에 스스로 속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조금 많이 자라 버렸으니까요.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컸어요. 살아가는 데 치명적으로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가끔 거슬리는 일들을 마주하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다 자라고 보니 180cm였어요. 어쩌면 더 컸을지도 몰라요. 잴 때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180cm의 여자로 사는 건 유일무이하지는 않아도 희귀한 축에 든다고 생각해요. 키 때문에 벌어지는 웃긴 일도, 슬픈 일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지금은 다행히 잘 극복했지만요. 소소한 불편함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애초에 포기해 버리거나 꿋꿋하게 맞부딪치면서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180cm의 인생이 오히려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렇듯, 저 아니면 누가 또 이런 인생을 살겠어요. 


네. 제 키는 180cm지만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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