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태어났을 때 평균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 영아의 평균 신장과 평균 체중으로 태어났대요. 하지만 딱 그때뿐,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평균에 속해본 적이 없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자라났거든요. 물론 그냥 자라나지는 않았는데요. 남들의 두세 배, 가끔은 네 배를 가열차게 먹어댔어요. 제가 먹는 모습을 처음 보는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그렇게 열심히 먹었는데도 언제나 마른 모습이었어요. 전부 키로 갔으니까요. 덕분에 늘 또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컸어요.
엄청난 식사량과 높은 시야를 가지고도 저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 다르게 매우 둔했었거든요. 게다가 퍽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일곱 살 때부터 유치원을 다녔는데, 제 키와 식사량을 지적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놀림 한 번쯤 받을 법한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무척 관대한 친구들과 함께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시절의 착한 어린이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거의 뭐 초등학생처럼 보였을 텐데 경계 없이 어울려주어 고맙다고요.
아무 생각 없이 자라나던 제가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낀 건 유치원 졸업 즈음이었어요. 그날은 아침부터 유치원이 매우 분주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모르는 어른들이 들락거리고, 들어가서 놀기 좋겠다 싶은 큰 박스들이 옮겨지고요. 어린이들은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톤 높아져있었어요.
그날은 저희 반이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습니다. 박스 안에는 어린이용 졸업가운과 학사모가 들어있었죠. 선생님들은 흥분한 어린이들을 줄 세워 야무지게 옷을 입혀 주셨어요. 다음으로는 학사모 차례였습니다. 가장 키가 컸던 저는 자연스럽게 맨 마지막에 줄을 서 있었는데, 그때 비극이 일어났어요.
제 머리가 학사모에 들어가지 않았던 겁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더 모자를 씌우려 하셨습니다. 머리가 들어가기는커녕 모자의 옆구리가 뀌질 것 같았습니다. 어지간하면 동요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당황하시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시무룩해졌죠. 선생님은 황급히 여분의 학사모들을 주워 오셔서 제 머리에 골고루 씌워 보셨지만 그중 어떤 것도 제 머리에는 맞지 않았어요.
결국 선생님은 그중에서 그나마 큰 학사모의 끈을 조정해 머리에 얹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셨습니다. 매우 불편했지만, 당시에는 모범어린이였기 때문에 선생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아래와 같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표정입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죠.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태어난 인생 2회 차, 과거로 온 시간 여행자, 어린이 몸에 어른 영혼이 들어간 웃지 못할 상황……. 뭘 갖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입니다. 한마디로 죽상을 하고 있죠.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낀 첫 순간입니다. 선생님이 조금 강한 힘으로 제 머리에 학사모를 눌러 씌우시려던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살펴봤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살펴보니 머리가 쏙쏙 잘 들어가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어떤 친구는 둘레가 남아 가지고 고개를 까딱거릴 때마다 모자가 신나게 흔들리더군요. 그때서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어요.
오, 난 좀 다른 모양인데?
어린이의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으니 기분만 팍 상해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그건 아마 쓸쓸함이나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어렴풋하게 깨달았을지도 모르죠. 남들과 같지 않다는 건 좀 적적한 일이라는 걸요.
아무튼 학사모 하나 때문에 저의 일곱 살 어느 날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다니, 참 웃긴 일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로도 웃긴 일은 그치지 않고 계속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도 찾아오겠죠! 당사자인 저로서는 마냥 웃을 수가 없네요.
*아, 머리만 큰 거 아니었냐고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 보니 입학할 때도 유치원 모자를 따로 맞췄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