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n 24. 2023

엄마와 컵라면

 1997년은 힘든 시기였다. IMF 몰고  구조조정과 도산의 여파는 사회 곳곳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교회를 찾는 발길이 줄어들었다. 동네를 떠나는 성도들이 늘어났다. 밤사이 가게 문을 닫고 사라진 동네사람들도 있었고 학교에서 모습을 감춘 아이들 역시 적지 않았다. 나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고 의심은 예외 없이 현실이 된다. 하나  신도들이 줄어들 무렵 엄마에게 병이 찾아왔다.  병원을 다니면서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방바닥을 구르며 이불을 부여잡고 통증을 참는 엄마를 안고 나는 같이 울었다.  살은 어린 나이였다. 내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의 근심과 걱정은 아이들에게 전염된다. IMF 뭔지도 모르는 같은  아이들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로 학교를 다녔다. 집사님  분이 여러모로 리 가족을 챙겨줬지만 아픈 엄마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던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했다. 아빠는 가망이 없다는 뇌종양 진단을 내린 의사를 찾아가 항의하고 싸우기까지 했다. 우리 집은 침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없다는 무거운 마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시절의 나는 매일 기도 했었다. 엄마가 낫기를 바라면서 기도했다.


 학교가 일찍 끝난 토요일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방에 누워있지 않고 엄마는 식탁에 앉아있었다. 가방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마친 엄마는 나를 반겨주면서 맛있는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돈까스를 먹고 우리는 기도원에 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기도원에서 엄마는 오늘 밤까지 여기 있어야 된다는 말을 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동안 나는 엄마 옆에  붙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불안했던  같다. 혼자서 간절하게 신앙을 의지하고 것만으로는 너무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사그라드는 삶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던 것이 아닐까. 절대 놓을  없는 결코 포기할  없는 자식이라는 끈을 신앙에 묶어 끝까지 버텼던  같다.


 저녁이 되자 가늘게 빗방울이 떨어졌다. 엄마와 나는 기도원 예배당에서 조금 떨어진 매점에 들렀다. 엄마는 나는 컵라면을 먹었다. 엄마는 튀김우동 나는 우육탕면을 골랐다. 뜨거운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오후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녁이 되니 한산했다. 3분이 지나고 나는 컵라면이 익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라면을 크게  젓가락 집어서 위에 올라와있는 얇고 동그란  건더기와 함께 엄마에게 건넸다. 내가   있었던 사랑의 표현이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말없이 보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를 았다. 빗소리와 엄마의 온기 그리고 맛있었던 컵라면이 가끔 생각난다.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엄마는 정말 기적처럼 병마와 싸워 승리했다. 요즘도  번씩 라면을 먹을 때면 엄마는 웃으면서 그때 먹었던 컵라면이 제일 맛있었다는 말을 내게 건넨다.

이전 08화 아토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