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까지 선선했던 날씨는 7월이 되자마자 폭염으로 돌변했다. 땡볕이 내리쬐는 옥상바닥에 바가지로 물을 뿌렸다. 장마와 폭염이 반복되는 한국의 7월은 여러모로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따가운 햇살에 화분의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준다. 두 시간 전에 널어뒀던 리넨셔츠는 빳빳하게 말랐다. 땀이 흥건해진 티셔츠를 벗고 샤워를 마친 후에 옷을 갈아입었다. 더위에 시달리는 여름 내내 나는 리넨셔츠를 입고 산다. 조금만 움직여도 자주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날씨. 티셔츠는 손빨래 만으로는 깨끗하게 세탁하기 힘들다. 손빨래만 해도 청결하게 입을 수 있는 리넨셔츠가 여름 나기에 제격이다.
어렸을 때는 여름만 되면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다. 90년대는 에어컨이 지금처럼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마 소재의 셔츠와 반바지는 여름 나기의 필수품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집은 여름에는 정말 덥고 겨울에는 미친 듯이 추웠다. 뜨거운 한낮의 땡볕에 달아오른 집은 찜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밤이 되면 기온은 소폭 내려갔지만 열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리넨이나 삼베 같은 마 소재의 옷을 입고 자주 씻는 것은 생존전략이었다. 동네 사람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연립주택들이 늘어서있었던 덕천마을 사람들은 모두 폭염과 맞서 고군분투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공원의 커다란 나무 그늘 속에서 더위를 피했다. 폭염 속에서 오직 매미 울음소리만 기운차게 울려 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부채나 양산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 시절의 새마을금고나 주택은행은 에어컨바람을 맞으며 쉴 수 있는 서민들의 피난처였다.
어름집 간판을 달고 있었던 얼음가게는 여름 내내 인기를 누렸다. 빙수기계를 들여놓고 팥빙수를 만들어 팔았기 때문이다. 연유도 없고 젤리나 떡 같은 고명 역시 빠져있었지만 사람들은 줄을 서서 빙수를 사 먹었다. 통조림용 단팥을 곱게 간 얼음 위에 올린 단출한 모양새였지만 시원함과 달콤함으로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만들어줬다. 더운 여름철 즐겨 먹었던 음식들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시장에서 걸쭉한 콩국을 사 와서 엄마는 콩국수를 자주 만들어줬다. 채 썬 오이가 고명으로 올라간 콩국수는 우리 가족의 여름별미였다. 장 보러 갈 때면 콩물에 넣은 우뭇가사리를 한 대접씩 사 먹기도 했다. 슬러시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안양일번가의 본백화점에서 먹었던 맛과 똑같아서 용돈을 받는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다.
견디기 힘든 더운 여름이었지만 즐거운 기억도 많았다. 큰 비가 내리고 나면 흙빛이었던 안양천 물이 깨끗해졌다. 동네아이들은 하천으로 들어가 물놀이를 했다.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올라와서 공원 앞의 슈퍼에서 친구들과 쭈쭈바를 하나씩 사 먹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들과 놀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하얀 금을 긋고 오징어나 땅따먹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매일매일 놀아도 한없이 여유로웠던 여름방학이었다. 파란 하늘아래 쏟아지는 하얀 햇살은 뜨겁지만 늘 찬란했다. 그 햇살아래 뛰어노는 동안 어떤 걱정이나 불안도 없었다. 그 시절의 여름은 늘 즐거웠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늘 그리움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