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n 26. 2023

부흥회와 아이들

 여름과 겨울이면 찾아오는 방학. 독실한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은 방학만 되면 부모님 손에 이끌려 부흥회를 따라가야 했다. 기도원이나 대형교회의 지방 분관에서 열리는 부흥회는 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짧게는 2박 3일 길면 4박 5일간 하루종일 예배에 참여하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논리. 그 대단한 은혜를 향한 성도들의 열정은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황금 같은 휴가철에 휴양지 대신 부흥회를 선택했다는 것부터 이미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를 따라온 수많은 교회키드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해야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선택의 권리는 없었다. 그래서 교회키드들은 피할 수 없으니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했다.


 모두 같은 처지인 아이들은 부흥회 기간 내내 함께 어울렸다. 동질감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도 없다. 가족여행을 떠나는 평범한 여름방학을 보낼  없는 교회키드들은 서로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느꼈다. 부흥회가 끝나면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같이 있는 동안은 베스트 프렌드나 마찬가지였다. 입시생인 중고등학생은 부흥회에서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교회키드 무리에서 가장 연장자로 대접받았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지루한 예배를 피해서 아이들은 함께 모여 놀았다. 기도원 앞의 작은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술래잡기나 얼음땡 같은 놀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곳에서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것은 또래의 교회키드들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하는 법을 익히면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러다 보면 애들은 눈치부터 는다. 교회키드들은 하나같이 눈치가 빨랐다. 산속 기도원까지 자녀들을 끌고 온 부모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적당히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어른들이 기도할 때 같이 입모양을 맞췄다. 가늘게 실눈을 뜨다 서로 눈이 마주쳐서 웃은 적도 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설교를 들을 때는 조용히 있었다. 그래야 설교가 끝나고 찾아오는 자유기도 시간에 나가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아이들은 밖에서 놀다가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예배당으로 돌아가야 했다. 신앙을 훈련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깊은 신앙을 갖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래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훨씬 더 간절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바람은 시작은 순수하지만 언제나 욕심 때문에 왜곡. 부모의 계획은 거창하지만 정작 아이를 위한 배려를 찾아볼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의 신앙을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90년대에 크게 유행했다. 부흥회나 기도원에  때마다 부모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역시 그들  하나였다. 십계명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종교란 태어날 때부터 부모들이 정해놓은 이름과 같았다. 머리로 이해할 수도 없고 가슴으로 느낄  없는 신앙이라는 이름.  믿음 때문에 평범한 또래 친구들처럼 살 수 없었던 교회키드들.  시절 부흥회에서 만난 어른들은 기뻐 보였지만 아이들은 다들 외로워 보였다. 지금은 다들 자유로워졌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