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내게 외동이라서 외롭지 않냐고 자주 물어봤다. 그러나 나는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외동은 혼자다. 존재하지도 않는 형제가 있는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외로움에 대한 개념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혼자라는 사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지했다.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홀로 남겨진다는 현실을 유치원 무렵에 깨달았던 것 같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삶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죽으면 다 사라진다는 상상을 했다. 공허한 내면세계의 윤곽이 그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허무한 감정은 한 번씩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내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 다 사라진다는 생각은 고통스러웠다. 혼자라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했지만 외톨이가 된다는 현실은 가슴을 괴롭혔다. 다가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일로 불안한 자신이 우스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내면에 자리 잡은 의식은 맘대로 뽑아낼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주변에 잘하지 않는 성격도 괴로움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름의 대응방법을 찾았다. 불안하고 공허한 내면이 텅 비어있다면 채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면에 쌓기 시작했다. 경험하지 못한 삶과 체험하지 못한 세계를 품고 있는 책을 마음속에 담기 시작했다.
독서는 나에게 구원이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 공허한 삶이나 허무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힘이 책 속에 있었다. 어린 시절 혼자 집을 지킬 때가 많았던 나는 늘 책을 꺼내 읽었다. 좋아하는 책은 열 번 스무 번 반복해 가며 봤다. 책 읽기는 나를 지키는 가장 훌륭한 방어기제였다. 책 속의 세계는 늘 새로웠고 언제나 신선한 자극을 선물했다. 그 속에서 발견한 기쁨은 불안한 내면세계에 단단한 기둥이 되고 튼튼한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정말 어려웠던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교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어버렸다. 독서는 삶의 의지와 이어져있는 내 인생의 동아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책을 읽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커다란 깨달음이나 인생을 관통하는 지혜를 발견했던 것은 아니다. 몰랐던 세계를 엿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읽어본 적 없는 책 속의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삶은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책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불안은 내가 앞으로 한걸음 내딛는 순간 뒤로 물러난다. 언젠가 끝나게 될 삶이나 사라져 갈 인연을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흔적은 이렇게 글이 되어 뚜렷한 족적으로 남을 것이다. 사는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글을 남길 것이다. 책과 함께 나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걸어왔다. 읽기 전의 두려움은 읽으면서 모두 사라진다. 내면에 쌓은 책의 산속에서 나는 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