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림자라면 행동은 본체다

by 김태민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본인이 한 말을 잘 기억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담고 글은 사람의 인성을 닮는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살아온 인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언행이 따로 노는 사람은 신뢰할 수도 없고 가까이해서도 안된다. 말이 그림자라면 행동은 본체다. 본체와 그림자가 전혀 다른 모양새를 갖고 있다면 그 삶은 거짓이나 다름없다. 화려한 언변과 재치 있는 말주변으로 본모습을 위장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그들이 입으로 뱉는 인상적인 말은 가슴에 뜨거운 느낌표가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말과 다른 행동에서 오는 위화감은 마음속에 께름칙한 물음표를 남긴다. 그때 평소에는 조용했던 내면의 목소리가 조심하라고 귓가에 속삭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본인이 뱉은 말에 결코 책임을 지는 법이 없다.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흔하다. 기억하지 못하므로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고 여긴다. 사소한 것은 웃어넘기고 중요한 문제라면 핑계를 대면서 말을 돌려버린다.


위장과 위선이 생활화된 인간일수록 의사소통 과정에서 임기응변에 강하고 주의를 분산하는데 능하다. 능력만 좋으면 인성문제가 호연지기로 포장되는 동양문화권에서 이들은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을 흐리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빠져나갈 때마다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주변에 두 얼굴의 거짓말쟁이가 있다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맘대로 말하고 함부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쉽게 거를 수 있다.


반대로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위장에 능한 연기의 달인이라 판별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속일 수 있다. 이름과 나이를 위장하고 세월의 흔적과 외모의 단점까지 은폐할 수 있다. 매력적인 가면을 쓰고 빼어난 화술을 사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화려한 모양으로 춤추는 그림자너머 초라하고 비루한 본체를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과장과 거짓을 동원해서 삶을 위장할 수는 있지만 본성까지 숨길 수는 없다. 말이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관상은 과학이 아니다. 대부분 결과론적인 끼워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관상이 말하는 통계는 비슷한 외모의 집합에서 도출된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말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누적된 표본오차 없는 통계다. 화려한 언변과 매력적인 화술의 특징은 알맹이가 없다는 점이다. 미사여구를 동원하면서 변죽만 울릴 뿐 핵심이 없다.


사람들은 감투를 쓰고 연극적인 말하기를 하는 인간에게 취약하다. 어려운 전문지식을 늘어놓으면 설득당하거나 압도당한다. 그러나 진짜 전문가는 복잡한 진리를 간결하고 말끔하게 정리해서 깨달음을 준다. 가짜는 의문과 질문에 명쾌한 해답대신 다른 질문을 던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도망친다. 인생과 출신을 속여도 말까지 속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거짓된 삶을 살아온 인간이 쓰는 언어는 화려한 느낌표로 포장한 공허한 물음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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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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