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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08. 2024

마음이 지쳤어

마음의 병은 갑자기 찾아온다

 육체의 피로는 영양제 몇 알 먹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심리적인 피로감도 똑같다. 인간관계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다 보면 사람을 피하고 싶어 진다. 대화를 하는 것도 얼굴 보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모두 귀찮아진다.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에너지를 쓸만한 여력이 없다.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혼자가 좋은 것은 아니다. 고독은 싫고 외로움은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힘들다. 감정이 변하거나 친밀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좀 지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완전히 바닥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이 지쳤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피로가 잔뜩 쌓여서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소용없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워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좋은 책을 찾아서 읽어봐도 책장을 덮는 순간 깨달음은 사라진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글로 써보기도 하고 원인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보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공감해 주려는 노력이 진심인 것은 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다 잊어버리게 된다. 모두 사는 것이 바쁜 사람들이니까. 종종 찾아오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다른 느낌이다. 명확한 원인이나 뚜렷한 계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한 건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분명한 한 가지는 피로감이 점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피로는 무기력의 늪으로 사람을 끌고 들어간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저항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익숙해진다. 피로가 만성피로가 되는 것처럼 점점 적응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도 세상도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무력감이 내면을 완전하게 지배한다.


 육체피로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것처럼 내면의 피로감 역시 마음의 병을 부른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정신건강까지 챙기는 일은 쉽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는 여유가 없다. 특히 한국 사회는 놓치면 쫓아가기 힘들고 뒤쳐지면 따라가기 벅찬 곳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된다. 특별히 능력이 모자라거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무리해서 산다. 열정과 노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일까? 사람마다 체력은 다르다.


 육체와 정신의 내구도는 개인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 똑같이 잘 살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평균치라는 환상을 쫓아서 남들만큼 살고 남들처럼 지내려고 무리하게 된다. 인간은 무의식을 외면하고 살지만 무의식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만큼 남들만큼 해낼 수 없다는 불안과 부담감은 고스란히 무의식이 떠안게 된다. 무리하면서 과부하 상태에 직면하게 되면 내면에 손상이 발생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데다 자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들 이렇게 살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채찍질하다 보면 곧 한계에 도달한다. 이상징후를 느낄 때도 있지만 기분전환을 하거나 감정을 추스르는 정도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면에 커다란 천재지변이 찾아온다. 무너져 내린 마음은 쉽게 복구할 수 없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심리상태를 체크하는 법은 배울 곳이 없다. 내가 내 감정을 몰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나면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상처 입은 마음을 복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망가진 지반을 제대로 만드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심리적인 피로감은 붕괴의 전조증상이다. 무의식이 내지르는 비명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언젠가 괴멸적인 내상을 감내해야만 한다. 안타깝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피로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피로는 병을 부르고 마음의 병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예고를 무시하고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고통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한계를 직시하고 내 그릇의 크기를 인정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것. 제정신으로 살아남는 법은 그것뿐이다. 맨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평균을 쫓아가려면 무리할 수밖에 없다. 다들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산다. 결국 한국 사회 곳곳에서 비극이 터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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