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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pr 22. 2024

내로남불이 만드는 직장생활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는 괴팍한 사람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급나누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있다. 사는 동네와 자가유무 몰고 다니는 차의 배기량과 자녀들의 대학간판까지. 우열을 나누고 서열을 구분하는 줄 세우기를 즐기는 인간은 피곤한 속물들이다. 이런 급나누기는 본인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폄하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서열을 매기는 행위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등급이 매겨지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경험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도 급나누기는 사람을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 매사에 급을 따지는 사람은 집단내에서 차별을 만드는 중심축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할 뿐 사람 간의 차이를 가지고 대놓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을 아득하게 벗어난 인간들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욕하면서 자존감을 채운다. 스스로 자존감을 충족시킬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준을 설정하고 나면 기준미달에 속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된다. 비아냥과 조롱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이다. 자화자찬이면 넘어갈 법도 하지만 급나누기는 꼭 간섭과 훈수로 이어진다. 걱정돼서 한다는 말이나 생각나서 해준다는 말은 오지랖에 불과하다. 배려나 존중 대신 알량한 본인의 자기 자랑이 들어있다. 그러나 정작 급나누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급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다.


 한술 더 떠서 그런 사람들을 뒤에서 평가절하한다. 성공은 운으로 치부하고 업적은 때가 좋았을 뿐이라며 비아냥거린다. 급나누기의 기준점은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은 인정할 수 없다. 격차를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서열이 떨어진다고 여기고 끝까지 사실을 부정한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고 험담을 일삼는 이유는 결국 열등감이다. 직장 내에서 이런 사람은 아시타비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기가 잘한 건 몇 배로 포장하고 못한 건 책임을 회피하고 동료나 회사의 잘못으로 떠넘겨버린다. 자기 합리화와 회피에 능한 점을 볼 때 제 역할도 못하는 월급도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한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성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남을 욕하는 방법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들은 다르다. 애초에 자존감을 충족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본업에 충실하지도 않은 데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도 아니다. 나이를 떠나서 이런 사람들은 주도적인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적다. 회사는 사람들이 모여 화합하고 협력해야만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이다. 갈등과 분란을 초래하는 차별로 사람들을 대하면 집단은 와해될 뿐이다. 욕하는 것은 쉽지만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정말 어렵다. 애초에 사람들을 통솔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아냥만 늘어놓을 뿐이다.

 

 급나누기와 줄 세우기를 일삼는 사람의 내면은 너무나 초라하다. 항상 남들 앞에서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를 찾고 뽐낼 만한 이야기를 만드느라 머리를 굴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생활에 만족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관심과 인정이다. 하지만 비난하고 욕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모두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차별을 일삼는 인간들은 사랑받고 인정받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른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했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누가 잘못을 지적해도 인정할 줄 모르고 그릇된 사고방식을 비판해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괴팍하고 이상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회사는 작은 사회이자 다양한 인간관계로 엮인 거대한 네트워크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상호존중하면서 적응한다.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협력한다. 함께 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차이점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차이점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이해의 출발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상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혼자만 차별이라는 편견을 품고 살게 된다. 서로 대립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을 지향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미움과 차별을 일삼으면서 여론몰이와 줄 세우기로 재미 보는 시간은 짧다. 그 시간이 끝나면 심리적인 고립 속에서 사고방식은 뒤틀리고 내면의식이 망가지는 대가를 치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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