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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10. 2024

소문과 험담 그리고 카더라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악한 사람들

 누구나 남에게 험담을 할 때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료의 행동 같은 것들을 주변 사람에게 늘어놓게 된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알지만 안 해본 사람이 없듯이 험담도 마찬가지다.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한 번씩 스트레스가 고삐를 느슨하게 만들면 튀어나온다. 듣는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요새 일이나 사람 때문에 꽤 힘들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험담에 맞장구를 쳐준다. 사회생활은 감정을 숨기고 표정은 감추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어떤 분야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감정이 어긋나고 미움이 싹트고 갈등이 발생한다. 험담은 이 과정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응어리와 찌꺼기들이 모인 결과물이다.


 험담의 내용은 사실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나 발언의 방향성은 다르다. 같은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주변 지인에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험담을 넘어 악성루머가 될 수도 있지만 후자는 커피 마실 때 나오는 잡담으로 그친다. 친구와 차 마시면서 나눈 사담이 돌고 돌아 직장동료에게 타격을 입히는 괴소문이 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내부에서 여러 사람의 입을 건너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머는 충분히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친한 사람 혹은 가족 간의 대화에 들어있는 회사이야기는 그저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친 비방이나 원색적인 비난은 지양해야 하지만 푸념과 불만은 가까운 사이에서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구성원들은 같은 팀일 뿐 내 가족도 아니고 오래된 친구도 아니다. 그러므로 비밀은 존재할 수 없다. 루머에 들어가는 발언의 수위나 강도는 자연스럽게 자극적으로 올라간다.


 회사에서는 인간적인 비밀을 지켜줘야 할 만한 도의적인 이유가 없다. 그래서 험담을 하는 쪽도 험담을 듣고 재생산해서 퍼뜨리는 쪽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소중한 인간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료애나 공동체의식은 책임감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책임은 업무에 한정될 뿐이다. 정말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회사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은 책임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험담의 주인공이 된 동료를 지키기 위해 해명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줄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만약에 있다고 해도 그는 당사자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일 것이다. 오래 본 사이거나 같은 팀의 일원이라도 매우 밀접한 이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나서지 않는다. 돌고 도는 험담의 급류에 함부로 뛰어들면 나 역시 휘말리게 된다.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소문과 험담을 구별하는 기준이 생긴다.


 뒤에서 나를 욕하고 희화화하는 것은 험담이다. 내 실수나 행동을 가지고 비난하고 비아냥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은 발언이나 관계없는 행동을 엮어서 매도하고 모함하는 것은 악성루머다. 험담은 누구에게나 당할 수 있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후배나 매일 같이 보는 사이라도 뒤에서는 험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악성루머는 다르다. 루머는 분명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질 나쁜 루머로 입는 치명적인 피해는 루머를 퍼뜨린 사람의 즉각적인 이익이 된다. 그래서 괴소문은 본인의 이해관계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루머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의 호의와 지지가 있다면 개선될 수도 있지만 소문으로 널리 퍼졌다면 손쓸 방법이 없다. 악성루머로 인해 평판이 크게 훼손된다면 인격적인 살인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흔적만 남지 않을 뿐 악성루머를 조장하는 사람은 살인자와 다를 바 없는 위험한 존재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나쁜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즐거움 때문에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양쪽 모두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유형의 인간들이다. 재미 때문에 상대방의 인격을 비하하고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일해야 한다면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토대로 근거 없는 끔찍한 각본을 써내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나 휴식 겸 담배타임을 가질 때 악성루머는 입에서 입으로 돌고 돈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흥미만 끌면 된다. 루머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구성원들의 호기심만 자극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괴소문이 만들어진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간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의 악성루머는 직장 내 구성원들의 관계를 파괴한다.

 

 나쁜 뒷말이 나올까 봐 긴장하게 되고 서로를 믿지 않는 불신이 자리 잡는다. 신뢰는 집단의 생산성과 안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내부에서부터 신뢰가 사라지면 발전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안 좋은 소문과 루머가 가득한 회사의 인식은 대외적으로도 나빠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말은 회사의 뿌리를 갉아먹는다. 악성루머는 돌고 돌아 공동체의 근간을 망가뜨리는 나비효과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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