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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06. 2024

관계에 서투른 인간

  사람을 대하는 일은 늘 어렵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쓸모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는데 나중에 하려고 아끼다 못쓰게 됐다.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둔 진심을 정작 꺼내지도 못했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해서 해야 할 말을 너무 많이 줄였다. 돌이켜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 맘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생각했다. 배려를 가장한 고집이었고 존중을 빙자한 아집이었다. 나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사람에 불과했다.


  상대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신경질적인 불만으로 응수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던지는 차가운 말은 심장에 곧바로 꽂혔다. 차분하게 넘어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꼭 한 번씩 참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는 왜 타이르면서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내 생각은 핑계였다. 부족하고 초라한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어려운 질문 앞에서 모른다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용기도 없었고 진솔하지도 못했다. 내가 가진 흠을 감추는데 급급했다. 정작 둘 사이 벌어지는 틈은 보지 못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는데만 애썼다. 자기주장이 강해질수록 공감능력은 하락한다. 우리를 신경 쓰기보다 나를 정당화하는데 급급했다. 돌아보니 내가 지킨 것은 관계가 아니라 쓸모없는 자존심이었다. 인간관계에 자존심을 내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존심을 지키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혼자 남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들여다본다. 과거를 돌아보면 온통 후회뿐이다. 후회는 언제나 늦고 깨달음은 그보다 더 늦게 찾아온다.


 서로를 잘 안다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날카로운 말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욱신거린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은 떠나고 후회로 남은 순간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까?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상상은 늘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후회로 남은 미련은 사람을 미련하게 만든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결과는 항상 같을 것이다.


 후회는 꼬리를 물고 밤의 저편까지 길게 늘어진다. 자책보다 성찰이 빨랐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역사에 만약이 없는 것처럼 지나간 과거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무작정 시간을 낭비하면서 떠나보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대면하기 싫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관계가 서투른 사람이라는 내 생각은 초라한 합리화였다. 잘못은 내 몫이다. 시간은 아픔을 견디게 만드는 진통제가 되고 합리화는 잘못을 무마하는 마취제다. 약기운이 떨어질 때가 됐다. 벗어날 시간이다.


 시간은 착실하게 흐른다. 바쁘고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이 찾아온다. 몰려오는 후회와 상념들을 헤치다 잠에 빠져든다. 그런 날들을 반복하면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전하지 못한 마음과 말하지 못한 감정을 기억 속에 눌러 담았다. 개봉되지 않을 타임캡슐을 마음 깊은 곳에 파묻었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시간은 기록으로 남는다. 사람은 떠나고 이제 글만 남았다. 나이가 들면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에 적응한다기보다 현실을 순응하는 것에 가깝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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