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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29. 2024

벗어날 수 없는 권태감

 인생은 거대한 쳇바퀴다. 나이를 의미하는 앞자리의 숫자가 바뀌는 동안 줄곧 성실하게 쳇바퀴를 돌렸다. 죽기 직전까지 똑같은 일상은 반복된다. 종착역까지 아직 갈길이 멀다.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가끔씩 막막한 기분과 권태가 동시에 찾아온다. 멈출 방법이 없는 러닝머신 위를 하염없이 걷는 기분이 든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숙제를 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다른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이 계속된다.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도 남과 비교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휴식이나 제대로 된 방학은 없다.


 쉬는 시간이라도 가지려고 하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잔소리가 날아든다. 죄책감을 안고 다시 거대한 바퀴를 돌리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간다. 피곤하고 지루하다. 푹 쉬고 싶어서 큰 맘먹고 자리를 벗어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맘은 불안하고 몸은 불편하고 삶은 여전히 행복에서 동떨어져있다. 이제는 행복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태어났으니까 살고 아직 살아있으니까 계속 산다. 길게 이어지던 지루한 권태는 어느새 공허감으로 변했다. 답을 찾는 것도 귀찮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지겹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간은 서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지만 내면의식은 철저한 개인주의가 지배한다. 거실에 커다란 창문이 달려있어도 커튼을 치면 일상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다. 보이지 않는 얇고 투명한 벽을 치고 지낸다.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내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그 틈을 파고들어 온다. 권태감은 감기처럼 찾아와서 마음을 괴롭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다시 마음을 쥐고 삶을 정신없이 흔들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권태감이나 공허감의 원인으로 고독을 지목한다. 그러나 권태는 혼자든 여럿이든 상관없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산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좋은 인간관계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다들 인맥에 집착하고 관계에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대인관계는 인간을 잠시 위로할 수는 있지만 구원할 수 없다. 우울이나 고독 같은 감정을 느낄 때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다. 함께 공감하고 서로 교감하더라도 혼자 있는 순간 밀려드는 감정은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삶의 분기점을 좌우하는 것은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선택지를 고른다. 남다른 답안을 써내는 것을 주저한다. 가능성을 택하려면 불안한 미래를 함께 건네받아야 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변수보다는 상수를 좋아하고 반전이나 도전보다 안정을 동경한다. 다들 가능성을 뒤로하고 평범한 삶을 붙잡는다. 그러나 안정을 추구하려는 안일한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 권태와 무력감으로 변질된다. 생애주기적 위기라는 말로 포장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한 지루한 삶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살아온 날이 적지 않은데 여전히 살아갈 날은 까마득하게 남아있다. 한 달은 길지만 일 년은 짧다. 여름과 겨울만 반복되는 계절을 몇 번 보내고 나면 몇 년이 훌쩍 흘러간다. 산더미처럼 쌓인 기억들을 천천히 돌아보면 비슷한 사건들의 반복이다. 커다란 반전이나 극적인 역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일로 아파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울고 웃었다. 그런 평범한 날들이 모여서 삶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꽤 튼튼해 보였는데 지금은 내 눈앞에서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중이다. 쳇바퀴의 궤도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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