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l 26. 2024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다들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 모르겠다. 말은 걸러 듣고 행동은 의도를 가늠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 극심한 피로를 동반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기술은 날로 발전하지만 인간은 더 빠르게 퇴화하고 있다. 갈수록 더 무심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온기를 잃어가는 중이다. 진심이 아니라 관심에만 열을 올린다. 중독과 자극이 일상화되면서 SNS와 온라인은 욕망을 생산하는 창구로 전락했다. 진심을 전달하는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피상적인 관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의무와 권리는 있지만 책임이 없는 대인관계는 한없이 가볍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언제 돌아서도 서로 아쉽지 않다. 온기가 깃든 진심은 없다. 명절이나 생일 그리고 경조사가 아니면 연락을 주고받을 일 없는 사람들. 얼굴을 마주 보고 웃고 떠들지만 남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사진뿐이다. 겉으로 티 내지 않을 뿐 다들 똑같다. 함께 있으면 외롭고 혼자 있을 때는 괴롭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안이 될 수 없는 존재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다 같이 변했다. 아니면 다들 변하면서 세상도 변한 것일까? 어차피 순서는 상관없다. 사람들이 모두 다 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지만 경각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욕구와 욕망이 너무 많은 것들을 대체해 버렸다. 다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인맥을 원한다. 예외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계산기는 손익만 가늠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실망이 누적되면서 기대는 차츰 사라진다.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긍정을 붙잡고 싶지만 손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새어나간다. 인간관계에 관한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안이다. 자존감이나 자신감 따위를 거론할 여유는 없다.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품을 만한 여력은 없다. 기대를 하려면 결심이 필요하다. 결심은 가슴이 아니라 지갑이 결정한다. 돈과 시간은 한정적인 자원이다. 불안한 앞날을 두고 이상만 좇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람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게 된 순간부터 인간성은 유명무실해졌다. 수치가 증명하는 관계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감가상각이 한계에 도달하면 등을 돌리고 맘을 닫는다. 다들 속물로 변해버렸지만 어쩔 수 없다. 너도 나도 예외는 없다. 사회가 변하면 구성원들도 함께 변한다. 손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는 이미 사회적인 통념이자 확고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짜 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 간의 거리 두기는 일상이 됐다. 자연스럽게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외로워졌다. 이제는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조차 어색해졌다. 명함을 주고받듯이 가면을 쓰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연극을 한다. 온기를 나눌 수 없는 관계는 차갑고 공허하다. 누구를 만나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문제가 나에게 있다면 해법도 내 안에 있을 텐데 잘 보이지 않는다. 외로움이 괴로움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조용히 늙어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모두 다 혼자다.

이전 02화 무력감이 지배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