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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10. 2024

인간관계가 만드는 환상

 인간관계에 관해 사람들은 왜곡된 환상을 품고 산다. 이상적인 대인관계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인맥을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삶의 구원이나 인생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대체로 뒤틀린 믿음은 상식과 반대로 움직인다. 관계에 대한 환상의 본질은 허영과 욕심이다. 그저 사람 하나 잘 만나서 성공하고 싶은 이기적인 망상은 삶을 망친다. 별다른 노력 없이 잘 살고 싶은 욕망은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사회적인 신화로 포장한다.


 모두에게 추앙받는 인간관계론은 욕심이 만든 신기루에 불과하다. 인간은 변수가 너무나 많은 동물이다. 변함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혈육이라도 연을 끊으면 남이 되고 동료는 등을 돌리면 서로 적이 된다. 마음은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래서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 것처럼 마음과 관계는 예상을 벗어나서 요동친다. 상황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다 변한다. 남이 내 삶을 구원해 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이 또 있을까? 나를 제외하면 남은 결국 남이다.


 인연이 고통이라는 불교의 오래된 격언은 진리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걱정과 잡음이 많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물론 가을이 오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풍을 자주 맞다 보면 그전에 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다. 폭풍 속에서 갈대는 휘어지면서 살아남지만 울창한 나무는 뿌리째 뽑히거나 허리가 잘려나간다. 관계에 신경 쓰다 보면 내가 아니라 남을 의식하며 살게 된다. 시선은 내면이 아니라 외부로 고정되고 관점마저 남에게 영향을 받는다. 눈치가 늘어나는 만큼 눈치를 보면서 산다. 그러다 보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고 남만 남는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과하면 중독을 부른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괴롭다. 혼자 있는 순간을 견딜 수 없어서 쉬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쉴 틈 없이 인연을 맺는다. 진심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손익을 따져가며 인맥을 수집한다.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중독은 마약처럼 벗어날 수 없는 의존을 낳는다. 본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타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 인연이라는 말로 서로를 구속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결박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줄은 느슨해지고 매듭은 풀리는 법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한 존재다. 타인의 삶을 떠안고 무게를 감내할 수 있는 강인한 인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에게 내 삶을 의탁하려는 나약한 생각은 위험하다. 인간관계로 득을 보고 실을 줄이려는 안일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 맘이나 남이나 절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끊어져도 할 말은 없다. 나를 제외하면 모든 인간은 전부 남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남이니까 무슨 짓을 저질러도 할 말이 없다.


 관계 맺고 유지하는 일은 감정을 소모한다. 감정은 에너지다. 사람에 따라 용량은 달라도 총량은 정해져 있다.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감정을 쓰다 보면 방전되면서 마음이 망가진다. 배터리는 충전할 수 있지만 다친 마음은 좀처럼 쉽게 회복할 수 없다. 나는 남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더는 감정을 필요이상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 욕심으로 얽힌 인연은 짐이다. 짊어지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조용히 살고 싶다. 사람 때문에 생기는 피곤한 감정낭비가 싫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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