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모니터에 떠 있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쓰고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여기저기 손을 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유를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짜증이 솟구친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창문을 열고 무거운 공기를 밖으로 몰아낸다.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창 밖의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스트레칭을 하고 굳은 목을 풀고 다시 자리에 앉아보지만 그대로다. 피곤하지도 않고 컨디션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이상하게 일이 잘 안 풀리는 느낌. 머리에 블루스크린이 뜬 것 같다.
마음에도 리셋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시원하게 재부팅하고 싶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걷다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평정심이라는 단어는 현대인과 거리가 멀다.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러려니 하고 넘기다 꼭 한 번씩 짜증이 올라온다. 맘에 안 드는 사람이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게 있다. 내 탓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태도가 스트레스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세계와 상호작용을 한다.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소통하다 보면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스트레스를 결정한다. 상호작용을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현상을 보는 관점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소통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태도를 성격이나 가치관으로 바꿔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스트레스받는 지점이나 원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스트레스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각이나 태도를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정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유 없는 스트레스는 없다. 감정을 억누르고 버티려고 애쓰다 보면 마음의 체력이 바닥나버린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지만 참는다고 알아서 잘 풀리는 일은 없다. 희로애락은 본능이다. 웃음을 참을 필요 없는 것처럼 분노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정상이다.
인간관계에서 역지사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먼저다. 참을 수 있는 고통은 인내지만 참기 힘든 괴로움을 억지로 감내하는 것은 고문이다. 내가 나를 괴롭혀서 얻을 수 있는 없다. 스트레스를 인정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 더 낫다. 올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적인 해법이다. 직언을 하거나 마음에 담아둔 말을 꺼내면서 섭섭함을 드러내도 된다. 때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언쟁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대화는 결국 소통으로 마무리된다. 오해나 앙금이 남지 않게 화는 늘 대화로 풀어내야 한다.
참는 게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지만 스트레스는 참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이다. 무작정 참고 견디라는 말이 정설로 통했던 시대는 사람들이 술담배를 달고 살았다.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담배와 독주로 이겨냈다.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관념이 정신을 지배하던 시절이다. 속으로 분을 삭이고 억지로 삼키면서 살아남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버렸다. 자식세대에게 본인처럼 미련하게 살지 말라는 당부 아닌 당부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잘못된 사상이 지배하는 시대는 피해자를 양산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술담배로 몸을 축내는 것보다 더 나쁜 방법은 몸을 혹사하는 것이다.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려고 일에 파묻히는 사람들일수록 빠른 속도로 내면이 황폐해진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다. 워커홀릭이라는 단어는 균형이 망가진 삶을 의미한다. 알코올이나 니코틴처럼 일도 중독된다.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나는 해법이라고 여기지만 스트레스는 내면 깊은 곳에 더 빠르게 축적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일에 매달리면 사람이 피폐해진다.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감정은 흐르는 물과 같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거나 방향을 강제로 틀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잔뜩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둑은 언젠가 무너진다. 그전에 주기적으로 감정을 비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다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방식이든 다 괜찮다. 몸을 상하게 만들거나 정신이 피폐해지는 수단에 손을 대지만 않으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자기만의 루틴을 갖는 것은 행복과 직결된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꼭 맞는 해법을 찾게 될 것이다. 포기하고 안주하기에 삶은 너무나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