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증오가 만연한 온라인 공간
유튜브 댓글창은 콜로세움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혈투와 난투가 벌어진다. 비속어가 없어도 은어를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인신공격을 할 수 있다. 반대되는 의견을 두고 인격비하를 일삼는 집단린치도 흔하다. 편협한 시각은 편견을 낳고 섣부른 판단은 선입견으로 이어진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사람들은 적의와 증오를 품는다.
피폐한 정신과 공격적인 성향은 온라인을 벗어나 현실에서 이상행동으로 이어진다. 온라인 공간에 만연한 차별과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회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충돌이 발생하지만 중재하려는 시도는 편 가르기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댓글 속에 감도는 분노와 증오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감정은 정서적인 공감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심리적인 공통점이 많은 집단은 동질감을 느끼는 만큼 적개심도 함께 공유한다. 그래서 혐오는 높은 전염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다양한 종류로 세분화됐다. 인종, 성별, 정치성향, 종교, 나이, 빈부격차, 거주지역, 출신지역까지 다채롭게 분화되면서 통합을 저해하고 분란을 키우는 중이다. 다각화된 혐오감은 온라인 공간에서 증식한다. 플랫폼은 증오와 혐오를 배양하는 인큐베이터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개방성을 보장한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서 부정적인 감정은 역병처럼 번져나간다.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 소통은 상호 간의 차이점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은 사라진다. 그러나 혐오하는 대상을 이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귀를 막는 순간부터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서 아예 열리지 않는다. 편견과 선입견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므로 소통은 단절된다.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지만 사람들의 의사소통방식은 단방향이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인류는 필요이상으로 너무 가까워졌다. IT기술은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를 허물어버렸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온라인에 접속 중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사건사고에 관한 대응속도나 이슈에 대한 반응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 간의 심리적인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초연결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단절이다. 흑백논리를 기반으로 한 편 가르기는 상식이 됐다.
증오와 편견이 합리적인 판단력을 망가뜨리면서 상호존중하는 태도가 사라졌다.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됐고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는 의미로 통한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전 세계가 모두 인터넷이라는 단일 커뮤니티로 묶여있다. 파급력은 점점 더 빨라지고 영향력은 갈수록 강해지는 중이다. 생각 없이 쓴 댓글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시대다. 초연결사회에 살게 되면서 댓글 하나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하고 사실처럼 곡해된 내용이 정설로 통하는 일도 흔하다.
온라인 공간은 차별과 혐오가 들끓는 아수라장이 됐다. 여러 플랫폼에서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정보는 일상을 침범한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썸네일 속에 교묘하게 섞인 자극적인 키워드는 혼란만 낳는다. 쓸데없는 이슈를 두고 다들 설전을 벌이면서 편을 가르고 싸운다. AI기술은 사람들 간의 간극을 아예 평행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해는 납득이 아니라 노력이다. 차이점을 받아들이고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다 같이 망가졌다.
대립하고 증오하면서 다들 삶을 낭비하고 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싸움을 하느라 시간을 버리는 중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패배자가 됐다. 유일한 승자는 조회수와 트래픽 증가로 광고수익을 올리는 플랫폼 기업뿐이다. 미워하는 만큼 살면서 사랑할 시간은 줄어든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혐오하다 보면 긍정적인 마음은 내면에서 사라진다. 초연결사회에 사는 인류는 인간성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