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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20. 2024

마음을 다치면 집으로 숨는다

사람이 망가지면 집도 함께 망가진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지만 마음이 아프면 의존할 대상을 찾는다. 대상이 없다면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감정과 욕망을 표출한다.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은 사실 내면의 위기를 알리는 구조신호일 수도 있다. 본능은 이성보다 먼저 몸부림친다. 가라앉는 배에서 내리려고 뛰쳐나오는 생쥐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관심은 진심이다. 따뜻한 시선과 감정적인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어떤 관계든 소원해지면 개선하기 어렵고 한 번 멀어지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서로 멀어지지 않도록 잘 붙들고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몇 년 전 사회복지사인 지인은 내게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근무지 인근에 쓰레기더미 속에 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집안 가득 채워 넣은 오물이나 다름없는 고물더미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민원이 빗발쳤다.


 구청과 복지관에서 손길을 내밀었지만 할아버지의 거부는 완강했다. 공무원이나 담당자들이 찾아갈 때마다 호통과 문전박대가 이어졌다. 모두가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을 때 봉사자 한 명이 할아버지 댁을 매일 방문했다. 환심을 사려는 행동이 아니었다. 꾸준한 관심은 진심을 품고 있다. 차가운 반응이 돌아와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변한다. 한 달 반이 지나자 짧지만 한두 마디씩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매일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마침내 대화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긴 설득이 통했고 철옹성 같았던 고물더미 집의 문이 열렸다. 며칠에 걸쳐 거대한 분리수거장 같은 집을 청소하고 난 후에 할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위기관리지원을 받고 치료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이 달라졌다. 집밖으로 나오면서 삶을 되찾았다. 온기를 담은 진심은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을 품고 있다. 마음을 다치면 사람은 집으로 숨는다. 부상을 입으면 안전한 서식지에 몸을 숨기는 야생동물과 똑같다. 인간도 동물이다.


 주거 환경은 사람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작은 지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사는 집은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사람마다 라이프스타일은 다르겠지만 평범한 삶에서 나오는 분위기와 온기가 있다. 흔한 일상이 반복되는 익숙한 생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친 사람이 사는 공간은 다르다. 삶의 균형이 깨지고 일상이 망가졌다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극심한 이질감을 느끼면 머리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


  마음의 병은 내면의식과 외부세계인 일상을 동시에 파괴한다. 생활환경이 엉망이 되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가능성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환경이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망가뜨리면서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집은 몸과 마음이 쉬는 안식처다. 하지만 마음을 심하게 다치고 나면 집은 변질된다. 생활감을 상실하고 안정감이 사라지면서 불안감만 남는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으면 타인은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다. 현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등을 돌린다.


 공간에 대한 이질감은 심리적인 거부감을 만들어낸다. 잡동사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집은 쓰레기장이나 매립지를 연상시킨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바깥에서 들어올 수 도 없는 집. 망가진 집은 내미는 손길을 차단하고 오는 발길을 되돌리게 만드는 경계선이다. 집이라고 부를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음의 병은 더 악화된다. 마음의 어두운 그늘은 공간을 잠식하면서 집에 깃든 생활감과 온기를 앗아간다. 사람이 마음을 다치면 집도 엉망이 된다. 삶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장애물이나 다름없는 집을 정리해야 한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잡동사니는 현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엄폐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빈틈없이 가득 차있는 물건들 사이에 다친 마음을 감추고 사람이 숨어있다. 어두운 바위틈 사이를 파고든 작고 약한 짐승처럼 떨고 있다. 손길을 내밀기 위해서 장애물을 걷어내야만 한다. 상처투성이가 된 가슴에 손길이 닿는다. 변화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갈라진 영혼의 빈틈 사이로 관심과 진심이 깃든다. 이 세상에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타인의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이 바뀌면 집도 변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세상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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