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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24. 2024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은 없다

악마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기반이 단단한 삶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면서 산다. 뜻대로 되는 일은 적고 계획대로 풀리는 일은 드물다. 간절한 기대는 자주 빗나가고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들 거대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위태롭게 산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는 두렵고 지나온 과거는 돌이킬 수 없어서 괴롭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똑같은 일상이 계속된다.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지루해서 외롭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안해서 괴롭다. 절망의 유형은 각자 다르지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는 점은 같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시기가 있다. 밤처럼 어두운 절망감이 내면을 가득 채울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고 밤은 물러간다. 지지부진하게 같은 자리를 맴돌아도 괜찮다. 길을 잘못 들어도 상관없다.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들 실패와 실수를 저지르지만 반성하고 만회하면서 산다. 지난날을 잊고 새로 시작할 용기와 체력만 있다면 괜찮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올바른 길을 알려준다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잘못된 길은 돌아 나오면 그만이지만 길이 아닌 길은 알고 보면 바닥 없는 늪이다.


 힘들면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 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은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인간관계는 심리적인 안전망이다. 하지만 사람은 동아줄이 아니다. 역전이나 반전의 계기가 되는 기회는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든 지나치게 의지하면 결국 의존하게 된다. 괴로움을 잊으려고 약물의 힘을 빌리다 보면 중독자가 된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의존은 곧 중독이다. 사람을 향한 과도한 믿음이나 애정은 심리적으로 지배당하는 비극으로 돌아올 뿐이다. 썩은 밧줄을 붙잡았다 떨어지면 그 아래 기다리는 것은 검은 늪이다.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은 없다. 삶은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계단에 가깝다. 한 번에 달라지거나 단 번에 나아진다는 믿음은 허상에 불과하다. 절망과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는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나 자유를 운운하면서 접근하는 이들은 사기꾼 아니면 사이비다. 그들은 사냥감을 발견하면 놓치지 않는다. 취약해진 내면을 파고든 다음 간절함을 이용하고 절실함을 악용한다. 미끼를 던지고 덫을 놓은 뒤 미소 띤 얼굴로 유인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상황을 먼저 조성하면 사람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속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시달리다 보면 수동적인 성향이 점점 강해진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마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따뜻한 말과 달콤한 위로를 가장한 집요한 유혹이 계속해서 마음을 흔든다. 방황하는 사람은 대체로 혼자다. 속사정이나 고민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로 고립된 상태에 놓여있다. 안정적인 인간관계와 건강한 자의식은 마음의 면역력이다. 면역력이 취약해지면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은 힘들다. 이겨낼 여력도 없고 주변에 막아줄 사람도 없다. 심리적인 안전망이 사라진 무방비상태이므로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낮아지면 반대로 자기혐오는 늘어난다. 이 시기가 길어지면 자기애가 무너지면서 삶의 결정권을 상실하게 된다. 공허한 무력감에 휩싸여있을 때 누군가 손길을 건넨다. 빗장을 걸어 잠그더라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냉대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모습은 그대로다. 그러다 보면 온기를 품은 호의와 친절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은 외부인인 나를 가족이나 형제로 여기면서 반겨준다. 결국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천천히 마음을 열게 된다. 그들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자고 격려하고 존중해 준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서 점점 의존하게 된다.


 완전한 일원이 되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고 추악한 세상에서 등을 돌리라고 종용한다. 몸은 마음을 따라간다.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잊고 지냈던 성취감과 소속감을 맛보게 된다. 마치 가족이나 친구보다 나를 더 아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로움을 채워주고 괴로움을 달래주면 사람은 동물처럼 길들여진다. 그저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결정하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흑백논리에 가까운 궤변을 주입당하고 세뇌나 다름없는 강요를 받다 보면 판단력은 사라진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스스로 모순을 깨닫고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유혹이 찾아오면 거부하고 미혹을 알아차리고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악마는 아름다운 천사의 가면을 쓰고 찾아온다. 이유 없는 호의나 대가 없는 친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는 목적을 갖고 있다. 머리로 납득하기 힘들고 가슴에 와닿지 않는 말은 가짜다. 좋은 것만 주는 사람은 없다. 인연은 고통을 동반한다. 모형처럼 예쁜 사과만 담긴 과일바구니 속에는 독사과가 들어있다. 벌레 먹고 멍든 사과 하나 없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은 대체로 허상이다.

보이는 것을 믿게 만들면 보이지 않는 것도 믿게 만들 수 있다. 과시하고 드러내면서 보여주는 것들은 각본을 근거로 한 연출에 가깝다. 속지 않으려면 아는 것만 믿어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속단하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진리는 보편타당하고 정말 단순하다.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재교육이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리나 자유를 내세우면서 깨달음을 운운한다면 경계해라. 믿음을 거론하면서 감정에 호소하고 결핍을 건드리고 부채감과 죄책감을 자극하려 한다면 즉시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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