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노는 내 안에서 나온다
온라인 공간은 증오와 분노가 가득하다. 유튜브나 SNS 그리고 뉴스 댓글창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아무 이유 없이 비난을 쏟아내고 거리낌 없이 인신공격을 주고받는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지갑이 마르면 인내심과 이해심이 동시에 증발한다. 인품이나 교양은 성격이 아니라 생활이 만든다. 삶이 팍팍하면 타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부터 어려워진다. 그래서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 증오와 분노는 일상이 된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 만연한 혐오는 정도가 지나치다.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맹목적인 분노의 진짜 이유는 미움이 아니라 부러움과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속내를 감추려고 혐오라는 표현방식을 통해 본심을 포장하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부러움은 미움을 낳는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뒤틀린 동경은 분노로 이어진다. 나도 갖고 싶지만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은 망가뜨리고 파괴해야 한다는 충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괴감과 열패감을 증오로 표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욕하고 미워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사실 속으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반성을 통해 성장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과정은 고통스럽다. 나의 부족함과 잘못된 행동을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남을 탓하는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한다. 남을 손가락질하고 미워하는 것은 정말 쉽다. 남에게 떠넘기면 나는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능력은 출중한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인재가 된다. 그러나 타인을 증오하고 매도하면서 내 자존감을 정말로 지킬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은 속일 수 없다.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영혼을 갉아먹을 뿐이다.
증오의 고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진다. 강한 부정은 긍정보다는 위장에 가깝다. 폄하하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어느 누구보다 강하게 열망하고 있다. 하지만 가질 수 없으므로 가지면 안 될 만한 이유를 만든다.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궤변이다. 일반화할 수 없는 내용을 진실로 포장하고 사건을 근거로 사실을 왜곡한다. 선택하지 않은 나를 현명한 존재로 포장하고 선택한 이들은 바보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를 쏟아낼수록 내면은 더 공허해진다.
사랑은 영혼을 풍요롭게 하지만 미움은 내면을 피폐한 황무지로 만드는 감정이다. 누군가를 미워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손익을 따져보면 손해만 있고 이익이 없다. 증오를 동기부여 삼아서 눈부시게 성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혐오를 토대로 성공하는 스토리는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다. 증오하는 삶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다. 낡은 감정에 발목 잡힌 채로 서서히 도태된다.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등에 짊어진 부정적인 감정을 벗어내야 한다. 꼭 끌어안고 있는 미움은 나를 침몰시키는 무게추에 불과하다.
성찰을 포기하고 혐오라는 쉬운 길을 택한 사람들을 웹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증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변질된다. 흑백논리나 다름없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멸칭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서 드러내는 맹렬한 적의가 단어 속에 깃들어있다. 언행은 품행과 대체로 일치한다. 말은 삶을 담는 그릇이고 삶은 자주 쓰는 말을 닮는다. 미움은 사람의 성품과 언행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 감정이다. 미워할수록 내 안의 고유한 인간성은 무너져 내린다. 그러므로 가질 수 없다면 놓아주고 될 수 없다면 단념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부러울 때는 축하해 주면서 그냥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 다 같이 웃을 때 나도 같이 웃으면 된다.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삼킨 감정은 응어리가 된다. 나를 초라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뿐이다. 열등감은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비교를 멈추면 부끄러움과 부러움은 잦아든다. 분노와 증오의 고리를 가장 빨리 끊는 방법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면전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타인을 향한 증오와 분노는 결국 내 안에서 나오는 왜곡된 열패감의 산물이다. 나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타인을 향한 혐오와 분노의 본질이다.
다들 성취를 두고 삶을 평가하려고 한다. 결과만 보고 과정에 성공과 실패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평가에 상처받고 서열을 매기는 문화에 고통받는 사람일수록 자기혐오에 쉽게 빠진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 남들이 가진 것을 손에 넣으려고 버둥거리다 보면 진이 빠진다. 손에 넣지 못한 것들을 행복이라고 규정하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된다.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면 미움이나 불만은 사라진다. 성취는 계절과 같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봄에 피는 벚꽃을 시샘할 필요가 없다. 서로 피는 시기다 다를 뿐이다. 그저 내 차례를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