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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21. 2024

막막함이 찾아올 때

 겨울은 늦은 밤이나 새벽보다 저녁이 제일 춥다. 해가 저물고 빠르게 어둠이 내려오면 빛과 온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찬바람은 살을 에는 것처럼 차다. 부러진 칼날 같은 눈발이 날카롭게 흩날린다. 새벽이 되면 아침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만 저녁에는 내일이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그때 느껴지는 막막함이 체온을 빼앗아가는 것 같다. 막막함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가슴이 무너질 때 공허감이 찾아온다.


 기분은 일시적이지만 감정은 오래 이어진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와 같다. 어디를 가도 나를 따라온다. 떼어내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마음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간절함이나 절실함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다. 현실의 귀퉁이를 부여잡고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다.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면은 겨울저녁 풍경을 닮았다. 봄은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다. 막막한 감정을 끌어안은 채 뜬 눈으로 아침을 기다린다. 벗어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유를 몰라서 대책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나를 남이 알 수 있을까? 납득은 쉽지만 이해는 어렵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감정이 세상에 존재한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모른다. 매일 보는 사이라도 내면에 비밀을 품고 산다. 막막함이 찾아올 때마다 고립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울감이나 공허감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쳤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나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내 안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다.


 한파가 이어지다 날이 풀리듯이 감정도 완화와 악화를 반복한다. 기온이 오르면서 단단하게 언 땅이 풀어지는 것처럼 안정이 찾아온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낀 평온함은 곧 사라진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도 유난히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날이 있다. 뺨에 닿은 하얀 볕이 품은 온기를 느낀다. 늦가을이나 초봄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해가 기울면 땅 밑에서 냉기가 올라온다. 온기는 사라지고 추위를 피해 옷깃을 여민채 몸을 피한다.


 반복해서 찾아오는 절망과 희망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때마다 막막한 감정이 찾아온다. 밤새 꼭 붙잡고 버텼던 동아줄이 날이 밝으면 썩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희망의 질감을 잊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절망은 기분 나쁜 농담을 던지면서 나를 조롱한다. 기대는 매번 실망으로 돌아온다. 꽃은 흔들리면서 핀다지만 사람은 흔들리다 보면 결국 넘어진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면의 회복력이나 근력은 편차가 크다. 키나 체중 같은 신체조건처럼 심리상태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세상은 패배자 혹은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가까스로 일어나면 늦었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좌절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꺾여버렸다. 가까스로 겨우 일어나겠지만 사실 서있는 것도 버겁다. 세상에 얻어맞으면서도 버티면 역전의 기회가 올까?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공허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은 아직 저녁이다. 아침은 멀었다. 다시 막막한 밤을 혼자 견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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