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비록 우리는 지금 추운 겨울을 겨우 살아내고 있지만

by 정이든

봄. 봄은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봄이 오면 오랜 친구와 차를 한잔 해야지. 교외 한옥 카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작은 잔에 녹차를 조르르 따라서 마시면 좋겠다. 사람들은 산으로 강으로 나들이를 가고, 지나가는 아이의 표정에는 천진난만함이 그득할 거다.


언어에는 분절성이 있어서, 연속적인 세상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구분 짓게 만든다. 4계절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분리된 4개의 단어 덕분에 단절된 듯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네 계절들은 단어처럼 뚝뚝 끊겨서 오고 가지 않고, 서서히 다가왔다 서서히 멀어진다. 마치 해가 지고 뜨듯 조용히, 천천히.


당신과 나의 봄도 우리 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가, 어느새 여름이 다가와 세상을 뜨겁게 달굴 거다.


우리 관계도 봄이 오듯 천천히 다가온다. 서로의 무신경이 관심으로 바뀐다. 어제보다는 오늘의 눈빛이 더 친근하다. 대화가 왕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연인이, 동료가 되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관계의 봄이 온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겠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온다 해도 괜찮다. 겨울은 한해의 끝이지만 봄이 오기 위해 지나쳐야만 하는 필연적이고 상대적인 과정이다. 추워야만 따뜻해지고, 따뜻해지면 다시 추워지는 것처럼, 우리네 교감의 온도도 그렇게 오르내리고 반복될 거다.


비록 우리는 지금 추운 겨울을 겨우 살아내고 있지만, 언젠가 봄이 왔을 리가 함께 할 하루를 떠올린다.


봄이 오면,

당신과 저녁 즈음에 만나 도다리쑥국을 먹을 예정이다. 맛난 술을 조금 반주로 곁들여도 좋다. 그리고 근처 옷집에서 쇼핑을 할 계획이다. 봄맞이 기념으로 기본 티셔츠 한벌을 구입해야지. 아니면 서점에 들러 부담스럽지 않은 책 한 권을 사고, 카페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자. 대화 주제는 가벼웠으면 한다. 골치 아픈 세상사보다는 우리의 일상, 소소한 고민거리, 봄이 오면 가고 싶은 곳 같은 것들이면 좋겠다.


또는 날씨가 맑은 날 주말 낮에 만나, 동네 산책로를 걷는 것도 좋겠다. 천천히 걸으며 아무 말 없어도 그걸로도 충분하다.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첫 번째 꽃집에서는, 봄꽃 수선화 한 다발을 사서 안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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