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의 한국 취업 도전기
한동안은 외벌이었다. 물론 남편도 스페인어 과외나 강연을 하며 용돈벌이를 했지만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전공이나 경력을 살려 한국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는 건 자국에서 스카우트되어서 비자를 받아 오지 않는 이상 매우 어렵다. 기본적으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건 적성과 상관없이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거다. 남편은 스페인어 원어민이었는데도 이력서를 올려놓으니 영어 어학원과 영어 유치원에서 면접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면접을 보면 열이면 열 내일부터 출근해달라-였는데 마지막에 꼭 희한한 조건을 달았다. 혹시 학생이나 학부모가 물어보면 미국 어디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같은 데서 왔다고 해달라는 것. 이 제안을 처음으로 받았을 때 매우 혼란스러웠던 남편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게 일반적인 것인지 물었고, 나는 그 지역 맘 카페에 학원 이름이랑 위치까지 올려버리기 전에 당장 거절하고 나와버리라고 성질을 냈던 기억이다.
뭐 그런 학원이 다 있냐며 열을 냈던 게 무색하게도 그 후로 면접을 보았던 모든 어학원들이 똑같은 요구를 해왔고 언제부터인가는 어학원 면접 제의 문자나 이메일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내 남편의 생김새를 말하자면 내 눈에는 라틴계 사람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 눈에는 그저 서양 백인이라고 생각하기 쉽게 생겼다. 그러니 이력서에 국적이 멕시코라고 분명히 적혀있는데도 그렇게 끊임없이 면접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한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국에서는 얼굴이 하얗고 맥박만 뛴다면 누구나 영어 강사가 될 수 있다'. 동의한다.
외벌이로 빠듯했음에도, 남편은 어떻게든 일을 하고 싶었음에도, 그렇게 제의를 해오는 몇몇 어학원은 조건이 꽤 좋았음에도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거절을 해온 이유를 나열하자면 첫째,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상대방의 국적이 어엿하게 있는데 거짓말을 해달라는 것 자체가 매우 무례한 부탁이며 셋째, 남편이 추후에 한국에서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될지 모르는데 그런 거짓말을 할 가치가 없어서였다.
매번 이번은 다르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갔다가 어깨가 처져서 돌아오는 남편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너만이, 너로서, 너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게 얼마나 걸리든 내가 서포트할 거고 응원해줄 거야.”
아마도 그때쯤이었을 거다. 남편 알피가 집에서 멕시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고 난 그걸 관찰하며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던 게. 그 해 겨울쯤엔 한 백화점의 문화센터 강연 제안을 받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멕시칸 쿠킹클래스를 진행할 기회도 얻었다. 아쉽게도 코로나가 휘젓는 바람에 모두 기약 없이 취소되긴 했지만 이렇게 우리의 색깔대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도 생활이 가능하겠구나 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나는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지나온 이야기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말이 좋아 '한국 정착기'이지 사실상 불시착에 가까웠던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응원가가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