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의 성장 연대기
알피는 한 곳에 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의 여정은 <알피의 대모험> 시리즈를 써도 모자랄 정도로 길고 흥미진진한데 간추린 버전으로 이야기해보겠다. 셰프의 꿈을 가졌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관광산업의 메카인 칸쿤으로 날아가 요리를 배우고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용감하게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들의 리스트를 뽑아 이메일을 보내거나 찾아가 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거절당하면 주저 없이 그다음을 찾아갔다. 그 결과 알피는 네 명의 국내 최고의 셰프들의 레스토랑을 거치며 전통 멕시칸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가 크루즈에서 만나기 전까지 그는 칸쿤의 한 초호화 요트클럽에서 부 총주방장(Executive Sous-chef)으로 일했다. UN사무총장과 페리스 힐튼이 휴가를 보내러 오기도 했다고 하니 그곳에 쭉 있었더라면 지금쯤 멕시코에서 꽤 잘 나가는 셰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칸쿤에 정박한 거대한 13만 톤짜리 크루즈를 보기 전까지는 아마 알피도 그럴 계획이었을 것이다.
알피의 경력과 직전 포지션을 봤을 때 크루즈에도 수셰프 정도로는 지원하는 게 타당했다. 그러나 멕시코라는 국적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 회사인 크루즈 선사에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멕시코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야 했는데 그들이 선사와 합의해 놓은 포지션들이 정해져 있었다. 일단 입사를 하고 나면 그 안에서의 승진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첫 계약부터 수셰프 포지션으로 바로 승선하는 건 불가능했다. 커리어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불공평한 조건이었음에도 멕시코 바깥의 세상이 궁금했던 스물셋의 그는 엔트리 포지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승선을 했다. 칸쿤 요트회사에서 알피의 밑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지원한 영국 국적의 친구의 경우는 첫 계약부터 수셰프로 승선을 했는데 말단에서 일하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 포지션을 조금 나은 곳으로 옮겨준 적도 있다며 알피는 조금도 불만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 후 알피는 부서를 바꾸어 여러 번의 승진을 거친 후 어깨에 제법 묵직한 견장을 얹은 프런트 데스크 매니저가 되었고, 우린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만났다.
커리어를 위한 도전에서 그 정도 결실을 맺었으면 어느 정도 안주할 법도 한데 그는 크루즈에서 하루 10시간씩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면서도 학사를 따기 위해 틈틈이 공부했다. 다행히 멕시코에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업계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논문을 쓰고 여러 번의 시험과 심사를 거쳐 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알피 옆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쓸 때면 왠지 모르게 문장이 술술 풀렸다. 정말이지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에서 시작해도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알피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 거절당하는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언어도 모르는 한국에 달랑 짐가방 두 개를 가지고 편도 티켓으로 와주었고,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150개의 가까운 국내외 회사에 이력서를 꾸준히 넣으며 다소 답답했을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새로운 전공의 석사학위를 따냈으며 그 결과 지금의 학교에 스페인어 교사로 새로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가 선언하듯 말했다.
"박사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