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그의 성장기
사실 제목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 남편이 박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던 게 먼저고 그 이후에 임신 사실을 알았으니까. 아니지. 남편이 박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땐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이미 나의 몸은 임신 중이었으니 내가 임신을 먼저 한 게 맞긴 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업까지 해낸 남편이 멋지고 대단하면서도 내심 와 끝났다! 하고 안도했는데 석사 학위증을 받기가 무섭게 박사 과정을 알아보고 있는 거다. 처음에 난 반대했다. 어렵게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었는데 동시에 박사 공부를 시작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할 수가 있으며, 게다가 강남까지 출퇴근하는 시간이 꽤 긴데 이게 체력적으로, 아니 물리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일이냐고 주장했다. 말로는 남편이 무리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내 몫의 너도 필요해” 하고 외치고 있었다. 퇴근하면 서로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여유롭게 쉬며 예전처럼 같이 요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싶은데 내 머릿속에는 퇴근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방으로 직행해서 논문을 쓰는 남편의 모습만 그려졌다.
그런데 덜컥 임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입덧은 엄마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엄마가 입덧이 말도 못 했었다고 하시니 겁이 나서 다음 달 수업부터 반토막으로 얼른 줄여놓았다. 그러고 나니 처음 느껴보는 불안함이 엄습해오는 거다. 일을 이렇게 차차 줄이다가 출산을 하게 되면 한동안은 경제활동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또 하나는 프리랜서로서 ‘수업량과 수입은 비례한다’인데 이건 꽤 속상했다. 드디어 둘이서 풀 파워로 벌기 시작했으니 이제부턴 한 달에 꽤 큰돈을 저금할 수 있겠다고 신나 있었는데 알피의 첫 월급과 동시에 내 월급은 반타작이 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박사 공부까지 한다면 아무리 멕시코 주립대학이고 장학금까지 받는다고 하더라도 학비 부담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여유는 누려보기는 커녕 또 버는 족족 정신없이 나가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처음으로 육아휴직 같은 건 없는 프리랜서라는 사실까지 문득 외롭고 서글퍼지는 거다. 한국에 왔을 때 더 적극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보려고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덤빈 대가인가 보다 싶었다. 물론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난 이제 몸도 불어날 테고 출산의 고통도 겪어야 하고 그러고 나면 한동안 일도 못하고 아기 보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남편은 여전히 사회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고 거기다가 박사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까지 놓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니 유치하지만 더 고집을 부리고 괜히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 거다.
“하루 종일 나 혼자 아기 보느라 집안일은 쌓이고 샤워도 맘놓고 못하고 너 올 시간만 기다릴 텐데 너는 집에 오자마자 조용한 방에 들어가서 논문 쓰는 꼴은 못 봐. 아기가 좀 커서 어린이집이라도 보낸 다음에 박사를 하든 말든 했으면 좋겠어”
결국 흥분해서 말이 뾰족하게 나가버렸다. 그에 반해 알피는 차분히 얘기했다.
“누가 너에게 이제 아기를 키우는데 집중해야 하니까 더 이상은 글을 쓰지 말라고 하면 어떨 거 같아? 목표를 가지고 뭔가를 계속 배워나가는 게 내 삶의 원동력인데 그게 없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여행하면서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잖아. 지금 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안주해버리면 우린 평생 예상 가능한 삶을 살게 될 거야. 내 전문성을 키워야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우리 가족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아기가 태어나고 일 년 정도는 공부를 쉬면서 나도 육아에 함께 전념할 테니까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게만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시작할 엄두를 못 낼 것 같아서 그래. 그리고 너도 힘들어도 글을 계속 써야만 해. 그게 온전한 너의 것이고 기쁨이잖아”
질 수 밖에 없었다. 알피 말이 다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