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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Oct 30. 2022

내 안의 작은 새가 하는 말

출판사의 반려 이메일 퍼레이드, 그 후

나를 ‘작가님’이라고 호칭하는 이메일이나 메시지가 올 때면 반가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모름지기 글을 써야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 텐데 첫 저서를 낸 뒤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책도, 세 번째 책도 쭉쭉 써내야지 하는 게 벌써 몇 번째 새해 다짐인지. 한동안 알피와 멕시코 요리를 해 먹으면서 꾸준히 에세이를 쓰고 브런치에 발행하는 재미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반응이 좋아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었던 글들도 꽤 있어서 적극적으로 투고를 시작하면 결이 맞는 출판사와 인연이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첫 책을 낼 때는 투고라는 관문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크루즈에 대해서 쓴 몇 편 안 되는 글을 어느 가을날 한 편집자님께서 발견해주시고 출판 제안을 주셔서 일사천리로 다음 해 6월 출간으로 이어지는 행운을 누렸으니까. 그래서 두 번째는 더 수월할 줄 알았던 거다. 투고를 한 출판사에서 반려 이메일이 올 때마다 마음을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담담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열여섯 번째 출판사에서 온 이메일을 끝으로 투고를 접고 바탕화면에 나와있던 초고를 아무 폴더에나 옮겨버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목표를 잃은 다음 날 아침, 침대에 누워 네모반듯한 천장을 보며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여태까지 내가 '나의 꿈'과 '나'를 동일시해왔다는 것이다. 목표가 있는 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나. 언젠가 그 목표를 이룰 나를 사랑했지만, 단 한 번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꿈이 없는 단일템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희망, 꿈, 목표 이런 것들은 모두 그동안 나에게 너무나 가깝게 붙어있어서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전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그럴 수 있지..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외치곤 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가 있지? 잘 찾아보란 말이야. 네 맘속 주머니 어딘가에 있을 거야! 없을 수가 없어!"


이랬던 내가 출판사들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거절의 이메일을 받으며 내가 가진 꿈이라는 것과 나라는 인간 사이에 어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참고로 이 기분은 참으로 어안이 벙벙한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자신 없는 것에 대해서 탈락하거나 거절당했을 땐 그럼 그렇지 하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고 3 때 포항까지 가서 대학 면접을 보고 (무슨 수학 공식을 설명하라고 했다) 탈락할 것을 예감했었고, 실제로 합격하지 못했을 때도 전혀 막막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잦은 항공사 면접 탈락도 마찬가지이다. 그땐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었지만 훤칠하고 예쁜 다른 지원자들 틈에 끼어있자니 여기선 합격하는 게 신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떨어져도 낙담은 했을지언정 화가 나거나 속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렵게 고백을 했는데 애매한 말로 거절당한 느낌이었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힘을 내! 분명히 너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각설하고  균열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균열의 틈을 악착같이 끌어당겨 붙여놓지 못하고  사이로 떨어져 버린다면. 그러니까 출판사들의 거절 이메일 퍼레이드에 낙담해서  이상 글도 쓰지 않고 다음 책을 내겠다는  따위도 구겨 던져버리고 그냥 밥벌이나 하면서 적당히 살게 된다면 어떨까. 갑자기 모든 것을 어둡고 낡고 애처롭게 보이게 하는 필터 하나가 끼워진 느낌이었다. 영화 <세 얼간이>에서 라주네 집이 나올 때마다 영화가 흑백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꿈이 없는 나는 처량했다. 맨발로 자갈밭길을 걷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날은 점점 춥고 어두워지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조금은 허황되어 보일지라도 꿈과 미래로 무장한 나여야 했다. 글을 쓰는 나는 실제의 나보다 훨씬 근사한 사람이 되고  안의 뭔가가 단단해지고 동시에 확장되는, 마음속에 살아  쉬는 작은   마리가 있는 그런 기분이 되곤 한다.  그게 필요했다.  안의 작은 . 책을 내고  내고는 출판사의 대답에 따라 좌절될만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원하면 독립출판을 하면 된다. 아니  책의 형태가 아니라도 좋다. 단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에 가지지 못할수록 포기하고 싶어 지는 게 아니라 더 단단히 부여잡고 싶어졌다. 나에게 그렇게 지키고 싶은 뭔가가 있어서, 그게 글이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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