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자연 Nov 12. 2017

귀머거리 유기견을 만났다

네가 있어서 참 좋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전체적으로 흰 털이었는데 얼굴과 꼬리의 절반만 까만 중형견이었다. 일주일 동안 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걸 봤다는 이웃의 증언에 아무래도 배를 곯았을 것 같아 일단은 집으로 데려왔다. 다행히 이 선한 이웃은 그동안 집 밖에 사료와 물을 매일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강아지가 좀 이상해. 듣지를 못하는 것 같아”


어쩐지 아무리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러도 쳐다보기는커녕 귀도 움찔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A가 강아지풀이 잔뜩 붙어 털이 뒤엉킨 강아지를 번쩍 안았다. 오후 내내 비가 왔는데 하나도 젖지 않은 걸 보니 똑똑한 놈이 분명했다. 집에 데려와 사료를 줬지만 스스로 코를 박고 먹진 않고 손바닥에 놔주는 것만 조금씩 씹어먹었다.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서 쓰다듬으면 화들짝 놀라는 걸로 보아 귀가 어둡거나 듣지 못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이빨 상태로 보아서는 한 두 살 밖에 안 먹은 강아지인데 몸집은 제법 컸다. 생긴 걸로 미루어보아 잡종이 분명했는데 그래도 비슷한 종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오스트레일리안 셰퍼드와 흡사한 것도 같았다.


우리는 강아지 털에 껌딱지마냥 엉겨 붙은 페가로파(털에 붙으면 잘 안 떨어지는 강아지풀 모양의 식물)를 떼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강아지를 눕혀놓고 쭈그리고 앉아 집요하게 털을 청소해냈는데 금세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A는 강아지 털을 뒤지며 까만 벼룩을 찾아내어 그 자리에서 손톱으로 톡 톡 터뜨렸다.



이 스트릿 개는 귀가 먹었다는 것 말고도 특이한 점이 여럿이었다. 일단은 희한하게 걸었다. 좋게 말하면 가볍고 경쾌하게 걷는 것 같은데 뒷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땅을 딛는 모양이 어딘가 웃기고 어설펐다. 그리고 또 하나. 목줄을 처절하게 거부했다. 밖에 나가겠다고 하도 낑낑대길래 급한 대로 카메라 끈으로 목줄을 만들어 데리고 나갔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갖은 술수로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목줄을 풀러 주니 그제야 어설프고 경쾌한 걸음으로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강아지가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차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가 날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럴 뻔한 걸 목격했다. 그러나 주인도 아닌 우리가 몸부림을 치며 필사적으로 목줄을 거부하는 그를 질질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준 뒤 바쁘고 희한하게 걷는 그의 뒤를 열심히 쫓았다. 산책이 끝난 후 도망가지 않는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있는 시간 내내 그는 밖을 그리워했다. 사실 그는 밖에서 더 행복해 보였다. 애초에 그를 집에 데려온 것도 우리가 돕고 싶어서였지 그가 먼저 우리를 따라오는 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서도 아니었다. 현관문 옆에 몸을 딱 붙이고 앉아 온갖 애달픈 소리를 내며 흐느끼는 그를 보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로 한 강아지를 괜히 잡아 가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음 날 아침


두 번째로 목줄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유튜브를 통해 귀머거리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법에 대한 비디오를 몇 번 본 후였다. 먼저 귀가 들리지 않는 그의 세계를 이해해야 했다. 들리지도 않는 강아지에게 큰 소리로 따라오라고 윽박지르고 손뼉을 쳐봐야 소용이 없었다. 일단 목줄을 채운 다음에 그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오 분 정도 길들이는 시간을 갖고 나니 문이 열리자 그는 자동으로 밖을 향해 걸음을 뗐다. 그러나 우리의 속셈을 알았다는 듯이 그는 또다시 현관 잔디밭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우린 그저 기다렸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맹인 안내견의 인도를 받듯 그 뒤를 따랐다.



단지를 벗어나 나무와 풀이 있는 곳으로 나오자 그는 자유를 요구했다. 마치 “자, 단지 앞까지 얌전하게 와줬으니 이제 나를 풀어주시오”하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를 놓아주었다. 다시 자유로워진 그는 경쾌하게 걷더니 뛰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그는 골목길로 사라져 버렸다.


“So, we had a dog”


A는 체념하듯이 말했다. 우린 걷던 트랙을 계속 걸었다. 강아지를 특별히 마음에 들어한 A는 아마 많이 서운할 터였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잃어버린 주인을 찾으러 간 것일까. 아니면 어딘가에 두고 온 강아지 애인이 있는 걸까. 내일 아침 11시에 잡아놓은 동물병원 예약은 취소해야 하는 건가. 귀도 안 들리는데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 때쯤 A가 소리쳤다.


“Look!”


저 반대편에서 그가 우리를 향해 껑충껑충 뛰어오고 있었다. 불과 10분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우리 앞까지 오더니 반갑다는 티를 굉장히 많이 내며 아직 씻기지 못해 떡이 되어있는 긴 꼬리를 열렬히 흔들어댔다. 우리가 그에게 자유를 주기로 한 것은 잘 한 선택이었다. 그 역시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돌아온 그는 목줄을 거부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린 집으로 향했다.





바깥에 산책나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신 분








두 달이 지났다. 그는 이제 내가 목줄만 꺼내면 밖에 나가는 걸 눈치채고 세상 행복해한다. 가장 신기한 건 그가 듣기 시작했다는 거다. 분명히 동물병원에서도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고,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는데 몇 주가 지나니 이름을 알아들었다. 지금은 작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도 쏜살같이 달려온다. (가끔 말 안 듣고 멋대로 날뛰면서 안 들리는 척할 때도 있지만) 주인을 잃은 스트레스였을까. 충격을 받으면 실어증이 오는 경우가 있듯이 비슷한 심리적 요인이었을까.


아무튼 난 네가 있어서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이 한 편의 시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