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외롭지만 묵묵히 쓰고 있을 당신에게
어떤 사람은 행복할 때 글이 나온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불행할 때 그렇다고 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행복할 때는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불행할 때는 모든 것이 떠올랐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종종 다른 브런치 작가분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최근에 만난 작가분은 반응도 없는 글을 계속 써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 나는 위로 섞인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만났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 얼핏 떠올라 계속 쓰고 있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여전히 쓰는 게 힘들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글은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묘한 위로를 받는다.
구독자 3천 명을 바라보는 내게 종종 묻는다. 그 정도 되면 그래도 괜찮지 않느냐고. 아니다. 브런치는 여전히 외롭다. 구독자가 1만 명이 넘는 작가분들도 외롭다고 하는 판국에 내가 그렇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외로움이 바닥을 길 때마다 한 번씩 마약 같이 다양한 채널에 내 글이 올라갈 때 그 희열이란. 익숙해질 법 한데, 그때마다 여전히 쓸모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다만 그 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아서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외로움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다.
김필균 문학 편집자는 여러 분야의 작가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책 《문학하는 마음》에 담았다.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여럿 나왔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박준 시인과 최은영 소설가였다. 이제는 워낙 유명해졌기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호로록 읽었다. 내가 상상한 멋진 모습과 달리 책에서 보게된 그들의 현실은 달랐다. 박준 시인은 회사를 다니며 시를 쓰고 있다고 했고, 최은영 소설가는 지금은 인세로 충분히 먹고살만하지만, 그게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전업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언제든 예전처럼 다른 일을 병행해야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일단은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글을 써보겠다고.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히 하는 사람이 멋있다. 잘하려면 남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꾸준하려면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할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기 자신과 경쟁할 때는 모든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사이먼 사이넥의 말이 그래서 더 와 닿는다. 그때 이 말을 알았더라면 오늘도 글 쓰는 게 힘들다고 했던 브런치 작가분에게 선물했겠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에 알게 되어 나중을 기약한다.
올해 1월에 전자책 한 권을 냈다. 그 책의 초고는 작년 8월에 마무리를 지었으니 지금은 거의 1년이 지난 셈이다. 책을 쓰는 두 달간 행복하면서 괴로웠다. 집필하는 동안에는 다신 못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지나니 또 쓰고 싶어 진다. 무엇보다 종이책을 출간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전자책을 출간한 이후에는 온통 관심이 '(종이책) 출간 작가' 또는 '출간 계약'에 쏠려있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수십 개의 출판사 메일을 알아내서 내 글을 투고하기는 싫었다. 책을 내봤자 많이 팔리지도 않을 텐데 그곳에 들어가는 품을 아껴서 다른 쓸모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가짜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잘하고 싶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손에 쥐어진 결과물을 얻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확신에 가까워질수록 그동안 느리게 쌓아왔던 글쓰기는 빠르게 빈약해졌다. 고민해서 쓴 문장은 형편없었고, 열심히 쓴 어떤 글도 남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 《문학하는 마음》에서 열다섯 살에 첫 책을 출간한 김혜정 작가는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썼지만 집 근처 카페에서 세 시간 정도 글 쓰고 난 뒤에 집으로 가는 길이 좋다고 했다. 책이 출간되고, 잘 팔리는 것보다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했네'라고 느껴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김혜정 작가가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집으로 행복하게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과거의 나를 떠올려본다. 거기엔 행복한 내가 있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잘 쓰지 못했더라도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해서 몇 시간동안 쓴 글이 무사히 발행됐다는 안도감은 회사에서 얻지 못했던 충족감을 가져다줬다. 그때의 나는 열정이 가득했다.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기는 삶을 살고 싶다. 다만 추구하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누구에게는 돈이 기준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권력이나 물질적인 보상이 기준이 된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닌 정신적 만족감이 기준인 사람도 있다.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기준이나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는 다르겠지만 욕구는 동일하다.
나의 기대치는 어느 순간부터 이제 글이 제법 쌓였으니 출간 소식과 출간 계약을 알리던 남들처럼 결과물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한없이 높아진 기대치 근처에는 내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곳에 나를 올려놓기 위해 몸부림 치니 힘들 수밖에. 그 과정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쓴 글 중 내가 좋아하는 글은 일상에서 묵묵히 쌓아가는 글이었다. 글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는 김혜정 작가처럼 하루 중 유일하게 가용한 시간을 활용하며 쌓아온 경험을 풀어썼고, 글 <일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은 취미는 존재만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주변에서도 취미가 있는 사람은 지루하고 힘든 회사 생활에도 쉽게 지치는 법이 없었다. 글 <작지만 확실한 하루를 위한 5가지 제안>은 어떻게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글들의 특징은 '여행'과 같이 특별한 경험이 묻어나는 글이 아니라,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든지 소소하게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에 가까웠다. 여행처럼 즉각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아주 느리게 하루하루를 쌓아가야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 위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이렇게 과거에 내가 쓴 글에서 다시금 힌트를 얻는다. 나는 일상 가까이 붙어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날에는 그들의 재능이 부럽고, 어떤 날은 그들에게 찾아온 행운이 부럽다. 하지만 그 부러움이 그저 시기하고 질투하는데만 머물렀다면, 나는 그들을 헐뜯고 미워하는데 마음을 몽땅 쓰느라 꾸준히 써야할 동기를 잃었을 거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욕심이 강한 사람이다. 글을 쓴다는 건 여전히 외로움 가득하고, 지루하면서 지난한 일이지만 동시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안도감과 여전히 내 생각들이 쓸만하다는 위안이 나를 지탱해준다.
퇴근 후 카페에서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보면 블로그 또는 워드를 켜놓고 글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때 속으로 그들에게 '오늘도 화이팅!'을 외친다. 내 진심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오늘도 주어진 제자리에서 묵묵히 글 쓰는 동료니까.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길에 시달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 대신 금요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계속 삶의 비루를 느끼면서 계속 시를 쓸 것 같다는 박준 시인처럼 오늘도 나는 외로움을 느끼며 묵묵히 글을 쓴다.
참고 자료
책 《문학하는 마음》, 김필균
책 《다크호스》, 토드 로즈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사이먼 사이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