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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28. 2018

나를 잃지 않는 법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 시절, 직장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자기계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꿈을 꾼 적이 있다. 막상 직장인이 되자 그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일상의 대부분은 회사에 팔려나갔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다시 잊힌 꿈을 상기시키며 무너진 일상을 세우기에는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들이 켜켜이 쌓일수록 일상에서 내 꿈은 더 이상 숨 쉴 공간이 없었다.


짐 자무쉬 감독이 제작한 영화 <패터슨>을 관람하고 썼던 의 초입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주변 사람에게 그 글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도 공감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그땐 나도 주변 사람들처럼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당시에 매달 꼬박꼬박 월급은 얻었지만 나를 잃었다. 지금은 그때의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해 마약 같은 월급을 포기했다.   


교토 여행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홍대 부근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경험'과 '체험'의 차이가 무엇인지 잠시 토론한 적이 있었다.
영어로는 두 단어 모두 'Experience'라서 견해에 따라 정의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나름 열띤 토론을 했다.
이를 통해 제3자적이고 안전한 입장에 머무는 것이 경험인 반면
상황에 뛰어들어 몸소 체득하고 느끼는 것이 체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치열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매일 바쁘게 살고 있지만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뭘 잘하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 적었던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이 가득해 체험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입에도 넣어보고, 만져보기도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면서 혼나기도 참 많이 혼났다. 체험하는 과정은 항상 즐거웠다. 매일 아침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났고, 웃음이 넘쳤다.


아는 것이 많아진 지금은 어떨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블로그 또는 여행책 후기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적어도 망하는 여행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안전한 여행을 즐긴다. 체험은 그 순간이 즐겁지만 경험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흘러 후보정이 되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왜곡되기도 한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아야 내가 분명해진다. 그래야 과감해질 수 있다. 과감한 인생은 실패가 가득하다. 대신 후회가 적다. 반면 안정적인 인생은 실패가 적고 후회가 많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의외로 놀란 게 하나 있었다. 정말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후회하는 분이 많았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불만족스러운 직장을 다닐 필요도 없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긴 싫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대신 선택을 해주지 않는다.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갓 출산한 엄마들은 본인을 부르는 호칭이 하나 더 생기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이름보다 '○○ 엄마' 또는 '○○ 맘'으로 통한다. 아이가 클수록 본인의 이름으로 불렸던 시간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나를 잃는다는 건 희생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대상이 내 아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니는' 회사를 위해 희생하기는 싫었다. 그때부터 나를 열심히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내 문제는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에너지를 느낀다.
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문제가 강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부담함과 비참함을 느낀다.



끊임없이 내면 읽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단추로 4년 전에 썼던 자기 분석 보고서를 업데이트했다.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분명 내가 쓴 글이지만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지금 드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지 않을 수 있구나. 내 생각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러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에 내가 어느 단계까지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지 찾아 나섰다. Strength Finder, MBTI, Grit 검사 등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성격 유형 검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모았다. 내가 속한 다양한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자료가 된다. 


#체계화 #디지털 #정리 #꾸준함 #시간관리 #추진력 #완벽함 #꼼꼼함 #자기이해 #리더십 #책임감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도출했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구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경 욕구가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귀찮아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힘들어하는 것을 해낼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것'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곤란한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답일수록 참일 가능성이 크다.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리스트업.


글을 쓸 때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내용으로 초안을 작성한다. 그리고 내용을 덧붙이면서 끊임없이 퇴고를 한다. 글의 분위기는 초안과 비슷하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정반대의 내용이 될 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완성된 글이 초안과 달라진 것이 아니다. 초안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지금은 완성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대해 리스트업 하는 것이었다. 막상 리스트업을 하려고 하면 뭘 하고 싶은지 뭘 싫어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글의 초안처럼 일단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 같은 생각을 먼저 적었다. 적어놓은 생각을 하나둘 실행하면서 좋아하는 것이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이 정말 싫어하는 것인지 리스트를 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퇴사를 앞두고 Workflowy에 '퇴사 후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제목으로 리스트업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소소한 리스트업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것의 '크기'보다 내 생각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다. 원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달성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소하더라도 원하지 않았다면 아마 미루고 미뤘을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이유보다 해야 하는 이유가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퇴사 후 세계 여행을 하고 싶은데 시간과 돈이 걸린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인가? 그냥 좋아 보여서 가지고 있는 개꿈인가? 남의 꿈을 내 것처럼 나를 속이고 있는 생각이 아닌지 끊임없이 탐구해봐야 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주변에서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났던 사람은 오히려 돈이 더 적었던 사람들이었다.)


비교하는 대상 공통점 찾기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항상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돈, 외모, 피부, 재능, 나이 등 비교하는 대상은 참 많다. 그러나 여기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통제 가능한 것 VS 통제 불가능한 것

비교 대상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아마 비교하는 대상의 대부분은 통제 불가능한 것에 위치할 것이다.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데 건물주가 되고 싶다거나, 영화 <페이스 오프>처럼 얼굴을 갈아엎을 수도 없고,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도 없다.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높은 기준을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력하는 시간에 비해 효과가 대단히 미미하다. 일상에서 비교를 할 때마다 그 대상이 통제 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통제 불가능한 것을 여전히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평생 그 생각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한다.



성장은 끝없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틀린' 것에서 '옳은' 것으로 나아가는 아니라,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또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약간 덜 틀린 것에서 그보다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실제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난 나이가 들고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틀린 점을 조금씩 덜어내 매일매일 덜 틀린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나를 잃기 참 쉬운 세상이다. 반면 나를 찾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독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 대한 내용이 많이 언급되었다. 이 글이 와 닿는다면 이 책에서도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말자.


나를 나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를 긍정하지 않으면 긍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정하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어딘가 뒤틀리고 말 것임을 알고 있다.
다큐PD 김현우 산문집 <건너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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