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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PD Nov 17. 2019

블록체인 게임의 정체성

공익과 사익 사이

지난 11월 6일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에서 노드브릭의 블록체인 게임 ‘인피니티 스타(Infinity Star)’의 등급분류 거부를 통보하고 8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나는 이번 게임위의 등급분류 거부는 적법하고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게임위 결정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사행성'이다. 그리고 쟁점이 되었던 두 가지 내용을 명시했다.


이번 결정은 해당 게임물이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고, 획득된 재료를 가상의 재화로 변환이 가능하며, 게임 이용자의 조작이나 노력이 게임의 결과에 미칠 영향이 극히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해당 게임물은 우연적인 방법을 통해 결과가 결정되고, 획득한 아이템을 토큰화하여 네트워크로 전송하는 기능이 게임에 존재하고 있는 바, 게임물의 내용 구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운영방식 또는 기기·장치 등을 통하여 사행성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두 번째, ▲탈 중앙성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이라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을 게임에 도입할 경우, 해킹 등으로부터의 안전성, 아이템 거래의 투명성, 데이터의 영구소유 등 장점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있었다.

- 보도자료 중 일부 -

전문 보기


이번 결정에 많은 업계 관계자들과 게이머들은 좀 더 상세한 이유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겼고 일부 매체에서는 불만 섞인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업계가 패닉에 빠졌다거나 국내 게임 규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사실상 모든 블록체인 게임을 금지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블록체인 게임의 육성에 힘쓰고 있는데 국내 블록체인 게임의 출시를 막는 것은 국내 게임 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겁박을 한다. 그리고 현재 서비스 중인 모바일 게임 중 현금 거래가 되고 있는 리니지M과 같은 게임은 허용되고 블록체인 게임은 안되냐며 사전심의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다. 이들은 과연 블록체인 게임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사행성 메커니즘을 중심에 두고 있는 일부 블록체인 게임 개발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기술에 매몰되어 게임 철학을 상실한 당신들로 인하여 건강한 블록체인 게임이 꽃도 못 피고 묻혀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게임업계를 다시 빙하기로 몰아가는 데자뷔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블록체인 게임의 핵심 가치


이미 많은 매체나 백서들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블록체인 게임의 핵심 가치는 두 가지 '영속성'과 '확장성'이다. 첫 번째 '영속성'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서버 조작, 오류, 다운 및 폐쇄 서비스 종료의 불신으로부터 해방일 것이다. 이렇게 영속적이고 중립적인 분산 데이터베이스로 안전이 보장되며 이론상 블록체인 게임이 온전히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서만 작동된다면 서비스 종료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그리고 나아가 서버 DB의 유실이나 조작이라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게임에서 획득한 재화 및 아이템이 자산으로 영원히 보호받게 된다. 두 번째 '확장성'에서 블록체인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 NFT(Non-Fungible Token)'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 일 것이다. 게임 내 자산의 역사가 모두 기록되고 그런 기록들에 의해 동일한 능력이나 기능의 아이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템을 다른 게임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런 형태로 하나로 연결되는 게임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공통된 경제체계가 돌아간다면 영원히 존재하는 '유니버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게임과 블록체인의 만남은 설레고 필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게임이 가진 '친밀성'이 블록체인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타당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핵심 가치의 기술 적용은 공익이라는 철학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블록체인의 탈중앙화의 실현이다. 만약 사익의 추구에만 집중된다면 결국 대중의 관심을 잃고 외면받는 기술이 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다. 이미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들은 스마트 컨트랙트 (Smart Contract) 거래 수수료를 분배하는 문제부터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분의 균형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을 위한 시스템 구축은 필수가 될 것이다. 기존 플랫폼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개인과 집단 모두 플랫폼이라는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성숙하지 않은 기술이 적용될 때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사익의 추구가 가장 큰 목적이며 이윤을 위해 시장을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존재들이다.



사행성 메커니즘으로 되살아나는 '바다이야기'의 망령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스크린 경마가 문화관광부의 강력한 제재안으로 순식간에 문을 닫았고 그 뒤를 이어받은 다음 타자가 대한민국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아케이드게임소위의 등급결정을 받은 바다이야기라는 '합법적인 아케이드 게임기'였다. 바다이야기에서 제공되는 경품은 현금이 아니라 상품권이었다. 처음에는 보편적인 환금성을 가진 '문화상품권'이었지만 나중에는 아무 가치 없는 '딱지' 상품권을 활용했다. 그리고 이런 상품권을 근처 '교환소'에 들고 가면 표면적으로는 라이터 같은 잡화로 교환해 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실제로는 일정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으로 바꾸어 주었다. 어차피 다른 곳에 가서 쓸 수 없는 오로지 환전을 위한 상품권이었다. 이렇게 '바다이야기'는 합법적인 게임이었다. 그리고 일본을 앞선 순수 국내 기술이라는 자위와 함께 성공신화로 포장되기에 이르렀다. 전국 오락실 1만 3천여 개 중 1만 1천여 곳이 ‘바다이야기’류의 성인 경품 오락실이 차지하고 아케이드 게임기에 LCD를 공급하는 업체까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 이야기의 종말은 대한민국 게임 역사상 유래 없는 스캔들로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손상시킨 엄청난 혼란이었다. 하지만 이런 붕괴를 앞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바다이야기'를 찾아가 돈을 쑤셔 넣었다. 이렇게 도박의 늪은 대한민국을 대혼란으로 이끌었다.


바다이야기 게임기는 게임물을 이용한 게임 결과가 사용자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우연성에 의해 좌우되며 이에 따라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정도의 허용범위를 넘어 손님들로 하여금 오락성보다는 돈을 벌 목적으로 게임을 하도록 하는 사행성 게임물에 해당한다

- 대법원 판결문 일부 -


결국 부패하고 무능한 영등위로 인하여 게임 전문 등급 분류 별정 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등위)가 출범하게 되었다. 결국 그토록 자율심의를 바라던 게임인들의 바람은 무참히 짓밟혔고 게임산업 진흥법 개정과 함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다. 초기 게등위는 납득할 수 없는 등급분류를 하기도 하며 게임 개발사들을 괴롭혔다. 내가 피처폰 시절 만들었던 '아이스스토리'라는 타이쿤 게임이 전체이용가가 아닌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을뻔한 일도 있다. 게임 내 도박 요소, 룰렛 카드 등의 미니게임 등장 만으로도 청소년 이용불가를 받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부 사행성 메커니즘 기반의 블록체인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위에 불만을 표하는 아이러니는 나에게 '바다이야기 망령의 부활' 같이 느껴진다.



블록체인 게임의 현실


2017년 말에 등장하여 인기를 얻은 이더리움 기반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는 마치 블록체인 게임의 시대가 순식간에 다가올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고양이 캐릭터 하나가 15만 5000달러(약 1억 7400만 원)에 판매되었다는 소식에 업계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블록체인 게임 골드 러시를 상상하며 많은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가 생겨났고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받는 회사들도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립토키티'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현재 DApp 랭킹 사이트에서 인기를 얻는 카테고리는 도박과 환전소다. 게임 카테고리와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크립토키티'가 게임 랭킹 5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많은걸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한다. 2년 동안 과연 DApp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DApp 랭킹 사이트 - https://www.dapp.com



철학적 고민 없이 흘러가는 블록체인 게임의 사행성


'크립토키티'가 유행할 당시 이미 많은 사람들은 블록체인 게임의 사행성 이슈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하지만 현실은 철학적 고민 없이 도박 DApp을 만든 이들이 흥행을 하고 사행성을 강화한 게임의 탈을 쓴 유사 도박 DApp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번 지스타에서도 많은 국내 블록체인 게임들이 선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상용화가 완료된 국내 블록체인 게임의 막막한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글로벌과 마찬가지로 철학적 고민 없이 그냥 흘러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크립토키티'와 이름까지 비슷한 '크립토도저'가 한국 블록체인 게임 흥행 대표작으로 소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행성 메커니즘 기반의 블록체인 게임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의 트로이 목마에 숨어들어 다시 게임업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게임위의 등급분류 거부를  '낡은 잣대' 혹은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기관', 'NFT까지 막는 건 과도한 규제' 등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집단들은 반성을 해야 한다. 결국 이런 부정적인 면들이 현재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 속도를 저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블록체인 게임은 완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최고의 수익을 내기 위하여 사행성을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블록체인 핵심가치를 위한 기술 적용을 공익이라는 철학에서 시작하지 않아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사익 추구가 만연해지면 너도 나도 순두부 같은 여린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버린다. 이것이 블록체인 게임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크립토키티'가 나왔을 때 이슈가 되었다. 자산의 온전한 소유권 때문에 사용자 간 아이템 거래를 허용해야 하는 이슈, 암호화폐를 통한 거래가 환금성 자산에 해당하는 문제, 그리고 이런 환금성 자산을 이용하여 확률형 아이템을 활용한다면 이것이 카지노 도박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본인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국내 현행법을 위반하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현금거래로 매출 순환을 만드는 MMORPG들로 장악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시장 상황에서 이런 사행성 블록체인 게임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게임 시장을 더 깊은 늪으로 끌고 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긍정적 감정을 담는 게임 디자인 철학


과연 블록체인과 게임은 잘 접목될 수 있는 걸까? 탈중앙화를 바탕으로 하는 블록체인의 철학이 결국 '환전소'라는 플랫폼에 다시 구속되는 게 현실일까? 상업적 성과만 바라보고 공익과 수익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저들은 과연 블록체인 게임을 만드는 이유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얼마나 했을까? 이런 물음들이 한 동안 머릿속을 맴돌 때 지난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IGC X G-CON에서 마음을 울리는 강연이 하나 있었다. 게이머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물했던 게임 '저니'를 제작한 댓게임컴퍼니의 제노바 첸 대표의 강연이었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욕망, 표현하고 싶은 감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게임 속에 담고자 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하는.


블록체인 게임이 정말 게임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강연은 너무나도 잘 알려주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철학적인 고민을 먼저 해봐야 한다. 블록체인 게임의 플레이 목적이 그 결과나 보상에만 집중되어 근본적으로 내적인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과정이 노동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유사 게임은 결국 사행성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게이머들에게서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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