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셔의 몰락
원망의 칼은 거꾸로 쥔 칼날이고,
변명의 아궁이는 꽉 막힌 굴뚝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 주 PD -
이 글은 특정업체나 개인을 비난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그리고 게임 산업은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산업으로 '생태계'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게임산업 생태계의 '젠가'가 한번 더 무너지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젠가'를 쌓아 올리고 새 게임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모멘텀이라고 부른다. 많은 게임업체들이 이러한 모멘텀에 사라지거나 변화하였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번 '젠가'게임은 모멘텀이라기보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현실이 다가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콘텐츠 생산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수익
개발에 들어가야 할 재원을 줄이고 광고 재원을 상대적으로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개발된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 품질보다 포장을 하기 위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 경쟁력이 아니라 광고비용 경쟁력이 우위를 점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 마켓이 순위를 기반으로 노출되는 시스템으로 상대적인 경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비자 중심주의에게 멀어지는 시장의 미래는 소비자의 외면으로 돌아온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12월에 그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다. 2019년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되었다.
공명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가 이를 질투했다.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보수와 진보 등 좌우 대립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분열과 대립, 과도한 경쟁은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현재 자본이 지배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공명지조는 적용된다. 자본이 가진 두 개의 머리는 '연구개발 투자'와 '광고비용 투자'라고 볼 수 있다. 대형 개발사와 퍼블리셔들이 이 두 개의 머리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광고비용 투자'로 기울어지면서 '연구개발 투자'는 등한시되었고 많은 개발자들은 대우받지 못하고 토사구팽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사명감으로 버티며 주 72시간 이상 업무를 해도 개발기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개발기간 단축을 위한 인력 충원을 요청해도 회사는 잘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많은 개발자들은 집단 번아웃을 경험하며 죽음의 크런치 모드를 이어가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고 당시 사건들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줬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었지만 결국 프로젝트 장기화의 책임이 개발자에게 돌아오게 되는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현실에 우리는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프로젝트 장기화는 개발자의 문제일까? 최근 언론에서 국내 게임산업 위기 관련 기사를 쓸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들이 있다.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 중에 대표적인 '남 탓' 두 가지가 있다.
1. 중국 게임 공세 & 외자 판호 문제
2.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번째 '남 탓'은 대부분의 무능함들이 찾는 외부 요인 중에 하나다. 언제까지 중국 게임, 판호 탓만 하며 반성하지 않은 건지 참으로 한심한 현실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판호는 중국 내수시장 과열, 그리고 공산당의 게임 규제라는 원인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원인으로 중국 게임 개발사들은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만 하는 현실에 처하게 되었고 이제 안정적인 성과를 내며 계속해서 글로벌 게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관리하지 않고 결국 '현금화를 중심으로 하는 매출 순환 구조'의 게임을 양산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은 중국 게임 탓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면목이 있는 걸까? 과연 최근 몇 년 동안 메이저 업체들은 이러한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한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시장이 원하는 게임 개발과 새로운 BM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과연 얼마만큼 하고 있는 걸까?
두 번째 '남 탓'으로 넘어가서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프로젝트 장기화 및 신작 기근이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악의적인 마녀사냥이다. 2002년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는 당시에 경제계와 언론들은 이런 슬로건으로 산업계를 선동했다.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당장 경제가 망한다며 미친 듯이 떠들며 경제계의 나팔수가 되었다. 결국 주 5일제는 8년에 걸쳐 안착했고 2003년 3.1%였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4년간 4.3~5.8%를 유지했다. 주 5일제는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켰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자본은 항상 보수적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오만함으로 관리되지 않은 시장'에 대한 핑곗거리로 개발자들을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이기적인 '무능의 자백'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게이머들의 지갑만 바라본 경영진과 디렉터들의 무능과 오만함'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 그리고 작성되고 있는 '한국 게임 퍼블리싱 사업의 종말' 모든 글의 전제 '콘텐츠 생산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수익'이라는 접근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개발자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다시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개발자를 대우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게임산업 위기의 원인으로 만들고 누명을 씌웠다. 결국 오만하고 무능한 경영진과 디렉터들은 자본을 신봉하며 트렌드만을 쫓는 사냥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사냥꾼들에게 모바일 게임 시장은 IAP라는 '고래사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의 바다였고 경영진은 5~9년 동안 200억~300억을 기본으로 600억이 넘는 비용까지 그들의 고래잡이 포경선을 만드는데 기꺼이 투자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은 이미 그들이 생각 했던 것처럼 쉽게 기회를 내어주는 바다가 아니었다.
'F2P & IAP 중심의 모바일 게임 시장'
마켓에 F2P모델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포화되기 시작했고 IAP로 줄 세우는 매출 순위가 고착화되면서 신규 게임들의 노출빈도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광고를 하지 않으면 다운로드 제로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었고 상대적인 순위 진입으로 오가닉 게이머를 모아야 되는 상황에서 순위 진입을 위한 광고 과열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치킨 게임을 반복하며 결국 단일 게임으로 국내 유효한 광고 인벤토리를 독점하는 임계점을 넘게 되었다. 이 시점부터는 2~3억 정도의 광고 예산으로는 아무리 광고 효과를 끌어올리려 노력해도 치킨 게임을 시작할 앤티(Ante)를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이 악화된 원인은 크게 4가지라고 본다.
-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
- 카피캣 전략
- 글로벌 진출 역량 부족
- 광고 과열경쟁
F2P모델이 포화되며 매리트를 잃고 IAP 중심의 고액과 금 게임은 게이머들에게 P2W이라는 네거티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기존 PC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도 부분 유료화에 의한 P2W은 항상 게이머들에게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게이머들은 IAP를 주요 BM으로 하는 개발사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에도 BM은 착해지지 않았고 더 악독하게 디자인되었다. 나는 그러한 원인을 프로젝트의 대형화 & 장기화로 인한 엄청난 비용을 3개월 안에 빠르게 회수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모바일 게임은 PC 온라인 게임에 비해 비교적 라이프사이클이 짧았고 다른 경쟁작들이 나오기 전에 매출 순위 안에서 빠른 승부를 봐야 되는 특성이 있다 보니 BM은 게이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었다. 결국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시장은 '관리되지 않고 타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 이렇게 모바일 게임 시장이 악화된 원인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이런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는 모바일 게임을 이야기하기 전에 PC 온라인 게임 시절부터 문제가 되었다. 게임 시장이 주도권이 모바일로 넘어온 2014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년을 개발한 넥슨의 '마비노기2', 네오위즈게임즈의 '아인'등 대형 MMORPG들이 연이어 개발 중단을 선언했던 시기였다. 이외 CJ E&M의 `프로젝트 A4', 스마일게이트의 `프로젝트 A', 드래곤플라이의`사무라이 쇼다운 온라인'이 각각 개발이 중단되고, NHN엔터는 IMC게임즈의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배급 계약을 파기하는 등 주요 게임사들의 핵심 프로젝트가 개발과정에서 좌초한 상황이었다. 이후 위메이드의 '이카루스'를 제외하면 스마일게이트의 '프로젝트 T', 블루사이드의 '킹덤 언더 파이어 2', 레드덕의 '메트로 컨플릭스', NC의 '리니지 이터널' 등 관심작들도 개발의 장기화로 이어지며 개발 중단되거나 게이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당시 마비노기2는 전작을 성공시킨 김동건 PD 등 엘리트 개발진들이 개발 중이었고 '아인'의 경우 네오위즈게임즈가 투자하고 '킹덤 언더 파이어 크루세이더'를 만든 블루사이드의 이현기 PD가 설립한 이누카 인터렉티브에서 개발하고 있던 게임이었다. 당시 이 두 게임은 MMORPG 게이머들의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자본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트렌드를 따라 모바일 게임 개발로 갈아타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만들던 모바일 후속작들 또한 개발의 장기화로 이어졌다. 2019년 서비스 목표였던 김동건 PD의 '마비노기 모바일'은 2020년을 맞이하였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프로젝트 또한 장기화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현기 PD가 데브캣에서 만들던 '드래곤 하운드'는 2019년 11월 넥슨의 칼바람 리뷰를 통하여 개발 중단된 5개의 프로젝트에 포함되었다.
모두가 PC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이제 망한 시장이라며 배에서 뛰어내릴 때 게이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뚝심을 가지고 서비스까지 이어간 게임이 바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이다. 개인적으로 당시 김대일 PD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경쟁작들의 개발 중단으로 반사이익을 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검은사막' 성공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 부분은 뒷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고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가 되는 원인에 대하여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대형화 & 장기화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쫓아갈 수 없고 프로젝트의 선회력이 감소하여 의견 조율이나 시스템 변경에 취약해진다. 결국 종국에는 고액과금을 위한 카피캣 전략을 취하게 되고 독창성 없는 비슷한 시스템 구조나 장르, 콘셉트를 가지고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런 카피캣들은 생산자 중심적인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려면 광고 경쟁을 위한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한다.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가 되는 원인은 굉장히 복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중이 가장 큰 부분은 경영진의 결단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결단은 '기존 성과를 기반으로 능력을 초월하는 신임'을 받고 있는 디렉터의 영향을 받게 된다. 보통 우리는 이것을 '줄 세우기'나 '라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전작의 성과를 가진 디렉터들이 겪는 징크스가 있다. 바로 '소포모어 징크스'이다. 이런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한 게임이 서든어택 2, 라그나로크 2, 메이플스토리2가 아닐까 생각된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 디렉터들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프로젝트가 장기화되거나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나는 이것이 디렉터 개인의 징크스를 넘어 디렉터가 장악한 조직 전체가 겪게 되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즉 '디렉터가 제시하는 일방적인 성공 공식'에 대하여 '근본적인 방정식에 대한 고찰'이 없어지고 아무도 '왜?'라는 반론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성공 레퍼런스를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 (Survivorship Bias)
더군다나 PC 온라인 게임에서의 성공 공식이 방정식의 고찰 없이 그대로 모바일 게임에 적용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디렉터들의 과잉 자신감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전작의 맹목적 복제'를 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전작의 성공요인을 제거'해 버리기도 하는 문제들을 야기했다. 이런 성급함은 게이머들과의 교감을 만들지 못한 부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전편에 이야기했던 애자일 마케팅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장기화되는 프로젝트의 특징 중 하나는 '그래픽 퀄리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이 부분도 어찌 보면 지극히 생산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과 엔진의 발전은 보통 3년을 주기로 크게 바뀌었고 더불어 그래픽에 적용되는 미적 효과들도 눈에 띄게 변경되었다. 최근에는 그런 주기는 더 짧아지고 장기화된 프로젝트들은 폐기와 재생산을 반복하는데 재원을 소비했다. 그 대표적인 게임이 9년을 개발하고 사라지게 된 '페리아 연대기'였다. 개인적으로 넥슨의 위기와 매각이라는 상황을 만든 기여도 1위의 안타까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넥슨 개발 총괄 정상원 부사장은 이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넥슨을 떠나야만 했다.
그나마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는 성공작을 만들었던 네임드 PD들의 전유물이다. 이런 성공작이 없는 PD들은 자신과 팀이 원하는 게임을 제안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국 매출이 잘 나왔던 게임들의 장점만을 살려 돈 버는 게임을 만들겠다며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애증이 담긴 프랑켄슈타인을 예쁘게 포장하여 경영진들에게 제작 허가를 받는다.
얼마 전 인디라(인디게임 커뮤니티)에서 카피캣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조만간 카피캣을 주제로 글을 한번 쓸 생각인데 카피캣 자체가 사실 네거티브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의 인식이 '표절'과 비슷하게 사용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카피캣은 '생존전략'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이런 부분이 드러난다.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뒤 사냥 기술을 그대로 흉내 내는 방식
즉 이러한 생존전략이 먹히려면 '완벽한 해체 분석'을 통해 가능하며 단일 개체의 구성을 복사를 해야 생존확률은 올라간다. 하지만 대부분 카피캣을 적용할 때 성공작들의 좋은 점만을 복제하여 프랑켄슈타인을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오히려 생존확률은 떨어진다. 그리고 생존확률을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프레임은 독창성이다. 우리가 맹목적인 독창성이라는 프레임에 빠져 돌연변이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로 생존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결국 모든 창조의 영역은 카피캣과 독창성이 함께 공존하는 영역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도 같이 죽는다.
사실 '글로벌 진출 역량 부족'이 '한국 게임 퍼블리싱 사업의 종말'이라는 주제를 가장 단편적으로 얘기해 주는 영역이다. 사실 대기업이라고 해서 거대한 생태계의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버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덩치가 큰 항공모함이 움직이는 상상을 해보자. 함장이 명령에 따라 항공모함을 포함한 주변에 항모전단이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지휘체계를 통하는 건 물론 중간에 사소한 미스에도 항모 전체에 위험을 초래한다. 더군다나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기동을 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긴장감을 유지해야 되는 것이다.
경영진의 결정과 선택을 위한 분석도 오래 걸릴뿐더러 명령이 하달되어 목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대기업 경영진의 잘못된 선택과 번복은 엄청난 매몰비용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신중하지 못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을 생각을 안 하고 완벽하게 기울어버리고 자신만의 생존을 도모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 새로운 플랫폼 개척을 위한 노력, 그리고 기존 PC 시장의 유지력을 위한 마케팅, 시장관리 R&D에 소홀했고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나갔다. 이렇게 키운 덩치는 결국 프로젝트 대형화 & 장기화를 만들었고 카피캣 전략은 실패하고 엄청난 매몰비용을 만들었다. 이런 결과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작년에 있었던 넥슨 매각 이슈였다고 본다. 퍼블리셔가 퍼블리셔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시장 개척을 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THQ 흥망사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자.
'게임 산업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시장은 항상 변하고 그렇게 누군가는 종말을 맞이하며 화석이 되고 누군가는 파도를 타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 간다. 종말과 모멘텀은 그렇게 만나 있다.
단일 고객층, 단일 BM 또는 마켓의 한 부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콘텐츠 회사에겐 독이 된다.
THQ는 가정용 게임기의 라이선스 게임을 팔아 돈을 벌었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하고 PC 다운로드 형태의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라는 쓰나미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게임 개발 능력의 부제는 기존 라이선스 게임 시장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했고 채질개선을 하려니 구조 조정 등 엄청난 진통이 예상되었다. 사실 이런 엄청난 반발을 알고 칼을 빼는 경영진은 거의 없다. 이번 넥슨 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결국 기존 사업을 더 확장하거나 대작화에 기대게 된다. 대작 제작의 개념도 없는 경영진은 여전히 최소 개발비용과 라이선스 게임의 관행에 기대게 되었고 외부 평가가 좋아도 눈앞의 성과가 없으면 스튜디오는 바로 폐쇄되었다. 무조건적인 출시일 맞추기라는 관행을 이어나갔고 개발의 가치를 상실되고 투자자들은 투자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2007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벤치마킹하여 ‘워해머 40,000’ IP를 활용한 대작 MMORPG ‘워해머 40,000: 다크 밀레니엄’ 제작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제작은 5년간 표류하게 되고 결국 혹독한 구조조정을 맞이 한다. 그렇게 수백 명이 해고되고 회사는 파산 신청을 한다. 결국 파산 신청은 기각되고 통합 매각은 수포로 돌아가고 회사의 모든 자산은 경매에 부처 지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이런 THQ의 흥망 사는 생존을 갈망하는 우리나라 퍼블리셔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넥슨은 과연 매각 사태 이후에 어떤 청사진을 출력하고 있을까? 만약 넥슨이 새로 출력한 청사진이 대작 중심 집중 전략이라면 결국 THQ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형태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차라리 슈퍼셀의 개발자 기반의 소비자 중심적인 애자일 마케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일 것으로 보인다.
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전략은 규모가 있는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사실 자본력이 있는 기업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전략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다양하고 실질적인 '전략의 부제'에서 나온다고 본다. 결국 경영진의 선택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단서'를 붙이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나는 예전에 4:33 Creative Lab을 좋아했었다. 피처폰 시절 '에픽 클로니클'을 만들었던 '펀터 스튜디오'와 권준모 의장은 당시 넥슨 모바일을 뛰쳐나오며 혁신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다.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4:33을 흠모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퍼스트 펭귄을 응원했다. 하지만 나의 흠모를 깡그리 무너뜨린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4:33의 행보였고 두 번째는 내가 경험한 일이었다.
2015년 5월 4:33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게임 개발 조직을 정리'였다. 주로 '회색도시' 개발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4:33 내 개발 인력 중 4분의 1 가량을 권고사직 처리를 진행했다.
나는 이 사건을 4:33이 쇠퇴하게 되는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텐센트의 자본을 수혈받은 대부분의 퍼블리셔들은 '전문 퍼블리셔'를 표방하며 돈 되는 게임 개발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4:33의 오만을 경험한 두 번째 사건이 있었다. 나는 당시 중국 게임으로 돈을 번 퍼블리셔에서 퍼블리싱 PM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IP를 가진 회사와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다. 어느 날 대표로부터 호출이 있었고 자신이 권준모 의장을 만나고 왔는데 내가 맡고 있는 게임을 자신들이 맡아서 하면 100%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권준모 의장에게 자존심이 구겨진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몇 개월 동안 내 위 상급자 3명과 함께 대표실에 올라가 기획회의를 하게 되는 미친 짓을 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방향성을 잃고 중국 BM과 일부 시스템을 적용했고,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제안을 개발사에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고 나도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퍼블리셔의 오만'의 정점을 직접 경험하면서 나는 퍼블리싱 사업의 종말을 체감하게 되었다.
당시 '퍼블리셔의 오만'의 정점에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인큐베이팅'이다. 실력 있는 소규모 개발사들이 실적을 내기 시작하고 몇몇 개발사들은 퍼블리셔에게 인수되는 경쟁이 심화되고 먼저 유니콘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본력을 갖춘 퍼블리셔들은 이렇게 인큐베이팅이라 포장된 개발사 서치를 시작한다. 수많은 개발사들이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되기 위하여 지원하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의 오렌지팜, 넥슨의 NPC, 433의 유나이티드 등 조금씩 개념과 사업의 형태는 차이가 있었지만 인큐베이팅이라는 순기능을 강조하며 대외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많은 개발사들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개발사는 개발에만 몰두하고 다른 부분들은 인큐베이터가 조언해 주겠다며 활기찬 동거가 시작되었다. 자금의 압박을 받았던 개발사들은 무상으로 지원되는 사무실과 부대시설을 이용하였고 인큐베이터와 우선적으로 퍼블리싱 협상을 하는 조건이 있었다. 이런 인큐베이팅을 통해 실력 있는 개발사가 배출되기도 하고 출시도 못하고 사라지는 개발사도 있었다. 나는 대기업들의 이런 인큐베이팅 사업에서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사실 인큐베이팅 사업은 '관리되는 시장'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보통 프랜차이즈 사업이나 확고한 인프라 즉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후발 주자들의 실패 확률을 최대한 낮추는 부분에 포커싱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은 대기업 본인들도 관리되지 않는 시장이었고 플랫폼이라는 주도권을 갖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인큐베이팅은 누군가를 멘토링 하는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리스크 관리를 익히고 가장 안전하고 관리되는 시장으로 그들을 리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특히 흥행산업인 게임산업에서 이런 멘토링 형태의 인큐베이팅의 성공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모바일 게임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플랫폼의 도전 기회를 만들어 줬더라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어려웠던 시기 도움을 받아 버텨온 수많은 개발사들도 있지만 사업의 기회비용 측면에서 실효성을 따져본다면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평가받기는 힘들다고 본다.
어찌 보면 독창성을 가진 개발사들을 모아놓고 서로의 게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내부 스튜디오들 간의 리뷰를 하고 평가를 통해 출시 여부나 퇴출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당사자들은 어떤 게임을 만들게 될까?
하지만 산업의 전반적인 범위에서 진행되는 이런 인큐베이팅 사업의 평가는 짧은 기간 안에 평가되지 않는다. 더 오래 꾸준하게 진심을 담아 가느냐가 분명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넥슨 NPC의 폐쇄는 안타까운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지방까지 지원을 늘려가는 스마일게이트의 오렌지팜의 인큐베이팅은 언젠가 빛을 보게 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몰의 어둠은 두렵지만 샛별은 밝게 빛난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퍼블리셔들의 일몰은 가장 어두운 듯 하지만 이때 샛별은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PC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이제 망한 시장이라며 배에서 뛰어내릴 때 게이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뚝심을 가지고 서비스까지 있어간 게임이 바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이다. 개인적으로 당시 김대일 PD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경쟁작들의 개발 중단으로 반사이익을 본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검은사막' 성공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나는 검은사막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들을 조사하고 정리해 보았다. 외부적으로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관리가 가장 많이 보이고 있지만 검은사막은 게임뿐 아니라 개발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정리를 하였다.
초창기 계획되고 제한된 탄탄한 개발 (자체 엔진, 소규모 인력)
MORPG 기본에 충실
게이머들의 의견 반영한 시스템 개선
퀄리티 관리 (오리지널리티 관리, IP 관리)
셀프 퍼블리싱 전환 (모바일에 이어 PC도 전환, 개발사의 성장을 위한 조건)
준비된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 확장 계획
BM 개발
개발자 중심의 수평적 조직문화
그리고 펄어비스 '검은사막'의 성공은 우연한 게 아니며 그들의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개발 철학이 성공을 뒷받침한다. 2016년 정경인 대표가 신임 대표로 부임하고 인터뷰를 통해 펄어비스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한 내용이 있다.
정경인 대표는 펄어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낙관했다. 그러면서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조직문화에 가로막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력 있는 분들에게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려 한다”며 “펄어비스에는 나이나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만 있다면 1~2년 차라도 핵심 인재로 고용하려는 문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력 있는 개발자들에게 기회가 많은 회사고,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며 “그러한 분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만들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 인터뷰 내용 중 일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이러한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기대되기도 한다. 2019년 지스타를 통해 공개된 다양한 콘셉트의 게임들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펄어비스가 게임 사냥꾼이 되지 말고
게임 개척자로 영원히 남아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펄어비스가 퍼블리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게 되어 개발자들에게 소홀하게 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금처럼 개발자들이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으며 '사축'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날까지 샛별을 바라보며 그들의 항해가 계속되기를 미소를 머금고 지켜볼 것이다.
다음 글 #7에서는 '셀프 퍼블리싱의 시대'란 주제로 마무리를 해보려 한다. 국내 성과를 내고 있는 개발사들과 기대되는 개발사들을 소개하고 셀프 퍼블리싱 시대에 바라는 부분들을 이야기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