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저는 예지자(견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 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P131)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을 보면서 네루다라는 이름이 갑자기 정겨워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네루다 자서전을 읽고 나서 읽는 소설이라 그런지 재밌게 읽었다. 책은 정말 가벼운데 책 내용은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소년이 우편 배달부가 되어 네루다의 집에 편지를 가져다주며 네루다와 마리오는 서로 친근한 사이가 되고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세상을 달리보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칠레 내에 혁명이 일어나고 네루다는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고 마리오는 혁명군들에게 잡혀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정말, 간단한 소설이지만 문체 하나하나가 마치 시와 같아 깊은 여운을 주는 것 같다.
하나의 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마리오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말도 못 거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가 되고 나서 그는 시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네루다는 그에게 시를 가르쳐주며 시의 본질은 바로 메타포라고 말해준다. 메타포라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에 의미부여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일상에 쫓기며 산다. 언제나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고 똑같은 카페를 바라보며 길을 간다. 즉, 이런 세상이 지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가르쳐준 것은 바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파도를 보더라도 파도가 오늘은 눈물을 흘린다 혹은 파도가 오늘 웃고 있다며,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즉, 이것이 네루다가 마리오가 보는 세상을 바꿔 버린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세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가령, 내가 오늘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은 그냥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함께 놀다보면 그 사람은 나에게 의미적인 존재가 된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아무 관계가 아니었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사랑을 하며 서로만 아는 비밀을 간질할 때, 우리는 그 상대방을 연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앞에 발췌한 부분은 소설 속에서 네루다가 한 연설이다. 시인과 정치라는 개념이 뭔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네루다의 말을 들어보면 시인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세상을 노래하는 사람이다. 특히, 네루다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네루다가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동네 옆집 아저씨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들의 시인이며, 시인들의 시인이며, 아픈 사람들의 시인이었다. 즉 그는 억압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시인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볼 때, 사회의 약자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약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상처를 노래하고 감싸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라는 것은 메타행위로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사회에 착취가 있다면 착취의 사슬을 끊을 수 있게 경제를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다. 이처럼, 네루다와 같은 시인이 정치를 해야하는 것은 그가 탁상공론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말 민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눈물과 비명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의 꿈처럼 사라진 마리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게 되고, 네루다는 눈물을 흘리며 병사하게 되고 마리오는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운 것은 네루다의 꿈이 마치 세상에 짓밟히는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민중의 상징이었던 네루다는 죽었고, 네루다가 꿈꾸었던 정부는 몰락하고 그가 키웠던 마리오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네루다의 마지막 삶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네루다의 죽음이 있고 사람들은 총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터네셔널>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네루다의 정치신념은 현실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네루다의 시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 세겨졌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네루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네루다는 실패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그 눈물은 칠레 사람들 마음 하나하나에 시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괴로움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그 마음, 시를 통해 괴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네루다가 칠레 국민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네루다는 죽었지만 평생토록 칠레 국민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는 것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슬프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