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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an 28. 2016

나의 꿈이 무너졌을 때,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아서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제발 좀 절 놓아주세요.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엘 수 없나요? 아침에 나갈께요. 아버지를 침대로 모셔다 드리세요'


모두가 어린 시절에 꿈에 대해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대통령이 꿈이었고, 어떤 이는 유명한 과학자가 꿈이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멋진 선생님이 되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살면서 우리는 점점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점점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인 윌리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월급쟁이 세일즈맨이다. 집안에서 나름 가장이라 어깨에 힘을 주지만, 사회 속에서 그는 무능력한 한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평생을 가족을 위해 바치는 윌리를 보자면,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 중, 첫째 아들인 비프를 자신의 삶의 낙으로 생각하는 윌리의 모습을 보면 뭔가 마음이 뭉클하다. 윌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두 요소가 있는데, 첫번째는 아들 비프이고 두번째는 돈키호테와 같은 허황된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요소를 볼 때, 그의 삶은 윌리 자신의 삶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요소들로 자기 자신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허황된 꿈을 쫓다


윌리 : 오, 형님, 어떻게 하면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빛과 가족애로 가득했고 겨울엔 설매 타느라 두 볼이 붉어지는 줄도 몰랐죠. 언제나 어떤 즐거운 소식이 집 안에서 기다리리고 있었고 뭔가 좋은 일이 앞에 있었어요. 집 안에서 나는 여행 가방을 들 필요조차 없었고 빨간 자동차는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어떻게 해야 내가 그 애에게 뭔가 남겨 주면서 나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P.154)


윌리의 인생을 보면 그는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는 잘 나간다는 세일즈맨이라고 자신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는 과거에도 월급쟁이 세일즈맨이었고, 지금까지도 월급쟁이 세일즈맨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왜곡시켜 버린다. 그가 과거를 왜곡시키는 방법은 바로 현실은 부정하는 것이다. 윌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럴 것이라고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윌리는 세상이 계속 바뀌었지만 그 바뀐 모습이 왜곡되어 과거의 모습으로 계속 보이는 것이다. 즉, 몸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정신은 과거에 묶여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윌리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윌리의 형이다. 윌리의 형은 일종의 윌리의 이상적 자아이며 도달해야할 이상이었다. 하지만, 윌리의 능력은 이상으로 향할 수가 없었다. 윌리에게 있어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버티기 힘든 차이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윌리의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가장의 비극을 보여준다. 꿈과 열정만 있으면 그 어떤 욕망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자본주의의 외침에 따라 윌리는 달렸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 그러나 윌리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윌리는 자아가 없다. 윌리의 빈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과거다.


일그러진 가족 사랑


윌리 : 비프 로먼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서 그렇게, 그렇게 매력 있는 젊은이가 길을 잃고 헤맨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청년인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비프는 게으르지 않다는 거야. (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P.16)


윌리 : 젊은 영웅 같았지. 헤라클레스나 뭐 그런 거. 그리고 태양이, 태양이 온통 아이를 감싸고 있었어. 비프가 내게 손 흔들던 것도 기억나오? 그 구장에 우뚝 서서, 세 개 대학에서 온 대표단이 옆에 서 있는데 말이지. 내가 데려온 바이어들도 있고. 우리 애가 나올 때 그 함성이라니 ...... 로먼, 로먼, 로먼! 아무렴, 우리 애는 큰 사람이 될 거야. 그처럼 훌륭하고 빛나는 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법이지! (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P.79)


윌리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윌리의 부인은 순종적인 어머니의 상으로 나오고, 첫째 아들 비프는 돈을 잘 벌지 못하며, 결혼도 못하고 있다. 둘째 아들 해피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지낸다. 이 집안을 보면 뭔가 일그러져 있다. 그것은 바로 윌리의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비프가 망가진 삶을 살게 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외도를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내에게 신경질만 내는 가장, 첫째 아들이 자신의 형처럼 되길 바라는 왜곡된 사랑을 하는 가장,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그 사랑을 여성들로 채우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이런 모습이 우리 시대에도 만연한 가정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윌리가 가족에 대해 왜곡된 사랑은 매우 모순적이다. 어떤 대사에서 윌리는 비프를 질책하지만 대사가 끝날 때는 비프를 칭찬한다. 즉, 현실과 과거가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자아가 없는 윌리가 숨 쉴 수 있는 것은 바로 비프가 스포츠 경기에서 멋진 모습을 보였을 때이다. 윌리는 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 아들이 성공한 모습이 그를 달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윌리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비프의 스포츠 경기 때 박수갈채를 받는 기억이었다. 윌리의 이런 모습은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아이를 성공시키려고 한다. 아이의 성공이 자신의 잣대로 여기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겉으로 보면 아이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 보면 아이는 자신의 대체물이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아이를 사랑한다지만 오히려 그것은 아이의 목을 졸라 버리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낄 때 죽음 택한다. 비록, 윌리는 자신의 아들 비프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해 자살을 택하지만, 그 내면에는 그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프는 윌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윌리가 평범한 인간일 뿐이며, 자신에 대한 집착을 거두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때 윌리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윌리가 충격을 받는 이유는 비록 사랑법은 잘못 되었지만, 자신이 제일 사랑했던 자식이 자신에게 외치는데,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와 더불어 비프는 아버지의 관심으로부터 자신을 놓아달라고 한다. 윌리는 비프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놓아준다. 이 순간, 윌리를 지탱하던 두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 그가 힘든 삶을 살면서, 그를 지탱해주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는 더이상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의 정체성이 외부에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윌리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돈, 명예, 사랑과 같은 것들로부터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돈, 명예, 사랑과 같은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만약 자신이 이런 것을 삶의 목표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친 세상에 휩쓸리더라도...


윌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초경쟁사회에 살면서 사회가 정해 놓은 보편적인 길을 강요받는다. 나는 우리가 이런 슬픈 사회에 살지만, 이 사회를 박차고 나가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초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였는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잃고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괴로운 이 사회에 살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미완성된 답이라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가 이 사회가 가는 곳으로 끌려가더라도, 한번이라도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따라가는 사람과는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은 사회의 물에 휩쓸리더라도 절대로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가에 대해 기억을 잃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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