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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하연 Oct 05. 2023

500페이지 19권, 인생을 바꾸다


<세종실록>을 처음 만난 건 서른이 되기 몇 달 전이었다. 서른. ‘이립(而立)’이라고 하지 않던가. 스스로 일어서겠다 마음 먹었건만,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동기부여 책과 영상들에 중독됐고,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과정보다 달콤한 결과에만 눈이 갔다. 그들의 어깨에 올라타 잠깐 성공을 맛보았으나, 요행만을 바랐던 얕은 마음은 금새 밑바닥을 드러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이게 인생의 정답이야!’라고 말해주기를 원했던, 자기계발 10년 차의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통장을 열었다. 8만원. 4년 차 사업가의 전재산이었다. 그마저 2만 2000원은 동업자가 가져갔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정도 밖에 안된다고? 눈을 씻고 다시 봐도 8만원, 8만원, 8만원... 믿을 수 없었다. 초록색 종이에 인자하게 웃고 있던 세종대왕 그림에 눈물이 났다. 아, 이대로 끝나는 걸까. 한숨이 몰려올 뿐이었다.


<세종1446> 한 장면, 출처 : 뉴스1


그렇게 8개월이 흘렀고, 유독 시린 바람이 불어올 무렵 뮤지컬을 보게 됐다. <1446>, 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근엄한 왕이 나올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무대 위에는 힘없는 스물 두 살 청년이 서 있었다. 신하들의 조리돌림에 시달리고, 아버지 말이라면 꼼짝 못했던 그. 하지만 젊은 세종은 자신의 삶을 반전시켰다. 집현전 학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수많은 밤을 지새며 백성을 위한 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편찬하며, 음악을 제정하고 영토를 확정지었다. 눈이 멀어도 연구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훈민정음까지 창제했다. 그렇게 60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위대한 성군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세종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을까 알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종이 본격적으로 일하는 시기가 서른즈음부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고, 세종대왕 연구 권위자이신 박현모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교수님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특히 나는 실록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스토리들에 매료됐다. 나는 덜컥 “저도 세종실록 읽고 싶습니다!”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록은 꽤 높은 벽이었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10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200페이지는 2,000분, 무려 34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나는 하루에 2-3시간씩 실록읽기에 몰두했는데, 한자는 작지만 거대한 산이었다. (네이버 한자사전은 한 줄기 빛이었다.) 발제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200페이지 분량을 A4 20-30페이지로 줄여 정리하고, 질문에 답하며, 어록을 찾아야 했다. 자료를 만드는데만 1주일이 걸렸다. 젊은이의 생각이 궁금하다던 교수님은 내게 ‘배수찬’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셨다.(‘수찬’은 회의에서 전문적으로 세종의 질문을 받았던 집현전 관원을 뜻한다.)


세종실록을 모두 읽는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500페이지 19권, 총 1만 800페이지. 쉽지 않았지만 해낼 수 있었던 건 교수님과 같이 공부하는 도반님들 덕분이었다. 세종을 앞서서 연구해주신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실록을 읽었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분들 덕택에 안목을 높일 수 있었다. 친구들은 한옥카페에 나를 데려가며 성장을 응원해줬고,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디까지 버틸지 지켜보는 게 꽤 재밌다고 했다.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성공에 대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나를 도와주고 내가 도와주는 이들을 만났다. 내가 가진 것들에 집중하니 내 일을 찾기가 수월해졌고, 아주 작은 일에도 정성을 기울이니 결과가 좋았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세종커넥터’라는 브랜드가 생겼고, 세종국가경영연구원과 한국강사신문에서 칼럼을 연재한다. 외부로 강의를 가거나, 세종 관련 행사에서는 MC도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종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세종실록 중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사랑, 일, 자존감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때야하는지, 내 자존감은 어떻게 확립해야하는지 말이다.


이 책은 600년 전 이곳을 살아간 선배의 인생공략집이자,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전하는 편지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군가의 조언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힘을 더 얻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의 지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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