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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록 쾌선생 Oct 05. 2023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정성을 다했던 세종과 소헌왕후의 찐사랑 이야기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 성격상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곁에 있어주면서 그를 늘 응원해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서다. 외로워서 만나는 것이 아닌, 각자가 행복한 상태에서 서로 자리를 지키며 은은한 사랑을 주고 받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결혼이자 사랑이다.  


<대학연의>에 ‘안여지(安汝止)’라는 말이 있다. 당신(汝)의 마음이 오래 머무는 곳(止)에서 편안하게 있다(安)’라는 뜻으로, ‘삼갈 신(愼)’을 풀이한 글자다. 편안한 마음을 오래 지키는 것과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가 있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삼가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종의 사랑은 어땠을까?      

세종 8년, 도성(서울)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2,000호가 넘는 집이 불에 타고, 30여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당시 세종은 강원도로 군사훈련을 갔던 터라 경복궁이 텅 비어있었는데, 남아있던 사람은 임신 7개월의 소헌왕후였다. 그녀는 "화재가 일어났다고 하니, 돈과 식량이 들어 있는 창고는 구제할 수 없게 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힘을 다하여 구하도록 하라."고 명하고, 온 힘을 다해 화재를 진압했다. 신생 국가에서 상징이 되는 건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했던 소헌왕후의 리더십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세종은 이 말을 듣고 궁으로 돌아와 백성들을 구휼했고, 화재를 막는 금화도감을 설치하기도 했다.      


세종은 소헌왕후의 용기와 지혜에 감탄했다. 그는 소헌왕후에게 "품성이 덕스럽고 부드러우며,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그녀의 장점을 인정했다. 또한, 그녀의 리더십을 신뢰하여 "위급한 일이 있을 때는 중궁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소헌왕후도 세종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녀는 세종이 노인을 공경하고 효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 마음을 반영하여, 1432년 노인을 위한 잔치인 양로연을 열었다. 그녀는 양민부터 천인까지 무려 1,192명의 여자 노인을 경복궁 사정전에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본 89세 노인 이귀령은 ‘양로의 예를 일으켜서 노인을 우대하니 거룩한 일’이라며 세종을 칭찬했다. 이처럼 세종과 소헌왕후는 서로를 인정하며 마음을 나누는 존재였다.      


그런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세종과 소헌왕후는 아들 8명, 딸 2명을 낳았다. 후궁이 있는 세종이었지만, 자식 수만 봐도 얼마나 금슬이 좋았는지 느껴진다. 온천에 휴가를 갈 때도 그녀와 함께 가고, 군사훈련을 할 때는 바깥이 소란스럽다며 음악회를 열어주던 그였다. 소헌은 항상 세종의 곁에서 머무르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세종의 아내로, 내명부 수장으로 52년의 생을 마감했다.

     

인자하고 어질고 성스럽고 착한 것이 천성에서 나왔는데, 중궁에 오른 뒤로는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조심하여 후궁들을 예(禮)로 접대하고, 아래로 궁인이 미치기까지 어루만지고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었다. (중략) 국모로 있은 지 29년 동안에 늘 조심하였고, 사사롭지 않았다. 한 번도 친척을 위하여 은혜를 구하지 않았으며, 또 절대로 바깥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비록 궁중에서 날마다 쓰는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세종에게 얘기하여 감히 임의로 하는 일이 없었다. - 소헌왕후릉 지문     


출처 : 여주시 문화관광



그들은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평생을 함께했다. 서로를 위해 노력했고, 장점을 인정해주었다. 이 마음은 소헌왕후가 생을 마감한 후에도 이어졌다. 세종은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무덤 동쪽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동쪽에서 해가 뜨니 소헌이 눈을 감은 후에도 따뜻하게 지내길 바랐던 세종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실록을 읽으며 미래에 함께 할 내 배우자를 그려본다. 서로를 존중하길, 믿길, 사랑하길. 은은하게 표현하며, 아주 길게 사랑을 나누길. 그래서 예쁜 아이들을 낳고, 평생을 존중하며 살기를. 세종과 소헌왕후가 서로 안여지 같은 사람이 되어준 것처럼, 나와 내 남편도 서로에게 안여지 같은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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