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과거 답안을 쓴 하위지를 보호하다
실록을 읽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신하들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의 의견을 씩씩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다. 가장 높은 상사인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는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재위 20년 4월, 세종은 “ ‘대간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물게 되어 격려하는 뜻도 없고, 언로(言路)가 막히게 되어 정직한 진언자가 적을 것이라’라는 말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과거 시험 문제를 냈다. 그중 1등 답안은 하위지가 쓴 글이었다.
‘대간은 임금에게 직언하는 임무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천사 보수공사를 보니 예산이 낭비되고 있더군요. 대간들은 이걸 보고 가만히 계시는 겁니까? 자리에 급급해서 임무를 잊은 것 아닙니까?’ 하위지는 세종이 불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승도를 천여 명 이상 동원하고, 자재를 지나치게 소비하며, 상인들이 꾀를 내어 폐단이 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대간의 역할을 언급하며 베테랑 인사들의 잘못된 점도 언급했다. 왕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냐는 것 아니냐는 거다. 이 답안지에 대해 황희는 합격을 줬지만, 사간원의 관원들은 모두 사표를 내며 항의했다. 현직에 있는 신하들이 한낱 신진 인사에게 제대로 당한 것이니, 어찌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놀랍게도, 세종도 하위지의 손을 들어준다. ‘과거를 실시하여 선비에게 대책을 묻는 것은 장차 바른말을 숨기지 않는 않는 사람을 구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니, 비록 과인의(세종) 과실을 극구 평론했다 하더라도, 그 말이 만약 적당한 것이라면 마땅히 상렬에 놓아야 할 것이다. (세종 20/4/14)’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간원은 동의하지 않고 되려 도장을 찍은 황희 정승을 탄핵했다. 불탑 수리에는 반대하지 않았으면서,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황희는 탄핵을 받은 후 사직을 청했지만 세종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직서를 철회했고, 도리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항의했던 대간들을 파직시켰다. 만약 세종이 하위지의 답안을 보고 불이익을 주었다면, 대간들의 언로(言路;신하들이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종은 대간들의 언로를 막지 않고, 의견을 경청하는 데 집중하는 군주였다. 신하들의 말문을 트게 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기 위해 애썼음을 엿볼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을 뜻하는데, 심리적 안정(stable)이 아닌 안전(safety)이 핵심이다.
세종은 이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이용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과거 시험의 목적은 ‘바른말을 꺼리어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 선비를 구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여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흥천사 불탑 수리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세 번째, 공통된 이야기가 있었다. 과거시험 답안으로부터 나온 대간의 역할과 이슈를 언급함으로써 같은 주제의 대화를 하고 있다는 공감을 조성했다. 또한, 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는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원인과 결과, 상황을 정리하며 그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세종의 대처는 신하들에게 ‘여기에서는 이야기해도 괜찮다. 안전하다’라는 마음을 들게 했고, 그가 만든 심리적 안전감은 신하들이 왕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었던 초석으로 작용했다.
위의 사례를 보며, 심리적 안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상대방과 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강한 점만 부각해 상대방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심리적인 안전감을 조성하여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왔는가. 내가 그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그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어주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