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입에 어금니 확인하기
“이 정도면 됐어.” 우리는 일을 하다 보면 줄곧 스스로 합리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놓일 때가 있다. 디자인을 수정하면서 가로선이 중앙에 맞지 않을 때가 보이고, 글에서는 띄어쓰기가 두 번 되어 있을 때가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다행이지만, 아주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가 보였을 때는 어떨까. 발표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사람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만약 상대방이 디테일에 민감한 자라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많은 정책을 테스트하고 만들었던 세종, 세종이 가져갔던 디테일은 무엇이 있을까.
세종 13년 11월, 세종은 공조에 중국에 보낼 물건을 점검하고 있었다. 황제의 생일 때문이었다. 황제 일가의 생일을 적는 표가 담긴 통에 그린 용을 보게 되었는데, 그 그림에 용의 어금니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국에 출장을 가는 성절사가 대답하기를 “표문 통의 다섯 마리 용과 보자기 안의 한 마리 용도 모두 어금니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모두 더 그려 넣어서 가지고 갑니다.”라고 하였다.
세종은 헌부에게 명하여 담당자들을 국문했고, 태형을 쳤다. 담당자에게는 용의 어금니가 사소해 보인 것일 수 있겠지만, 용은 한 나라의 왕, 황제를 상징하는 굉장히 중요한 그림이었다. 중국에서 어금니를 빼먹었다는 것을 알면 어땠을까. 중국 황제를 능멸했다며 자칫 외교 분쟁으로까지 갈 수 있었던 중요한 일. 세종의 디테일 덕분에 일어나지 않았던, 읽는 자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사건이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 31년, 새롭게 제작된 편경을 듣다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칙(夷則)의 경쇠 소리가 약간 높은 듯하다. 몇 푼[分]을 감하면 조화가 될 것이다."(세종 31년 12월 11일).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이 찾아보니 편경을 다듬는 과정에서 먹줄이 다 안 갈린 것이었고, 수정해보니 그 음이 딱 들어맞았다. ‘좀 이상하게 들리는군.’이라는 자기 생각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음악 반 음 정도가 뭐라고’라며 쉽게 생각하겠지만, 이때 쓰이는 음악은 국가 의식에서 쓰이는 궁중의 음악이자 조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것이었기에, 세종은 편경 음 하나가 아닌 국가의 이미지까지 생각을 미친 결정이었다.
디테일을 보고도 눈을 감는 사람과 세종의 차이는 뭘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세종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택했다. 분명 그도 용의 어금니를 빠뜨린 그림을 보고 귀찮아하며 그냥 넘길 수 있었고, 편경 소리가 이상하지만, 그저 눈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작은 것이 가져올 미래를 상상했고, 분명 좋지 않을 미래에 대해 먼저 처리한 것이었다. 담당자들은 처벌받거나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었지만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던 세종의 혜안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세종은 그 일이 불러올 영향력을 예상했다. 단순한 실수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던 일들이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 조선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에 이용되는 음악. 즉, 아주 사소한 디테일일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귀찮음, 사소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예상하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던 그. 누군가에게는 그런 것까지 집중해야 하냐며 과도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디테일 하나에서 좋음과 훌륭함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세종에겐 지극히 당연하였다.
우리는 지금 어떤 디테일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프로다움과 좋음을 넘어 훌륭함으로 가는 데 꼭 필요한 디테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