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록 쾌선생 Oct 05. 2023

‘빠르게’와 ‘바르게’를 구분하라

세종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

나는 항상 빠른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오전에 업무를 주면 오전에 끝내는 스타일이었고, 책 편집이라도 할라치면 한 달 걸리는 일을 3일 만에 해냈다. 물론 카톡 답장도 엄청 빨랐다. 사람들은 나를 AI, 5G, 기계라고 불렀다. 그런 수식어들은 나에게 자신감을 불러 넣어주는 키워드였다. 그 뒤가 어떨지는 생각도 못한 채.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때도 난 여전히 고객의 책을 편집하고 있었다. 자기 책에 애정이 있던 그는 나에게 꼬치꼬치 이 책의 편집이 잘 된 것이냐 물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해주었기에 잘되었다고 얘기했지만, 그와 얘기할수록 나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마우스 롤을 빠르게 내린 탓에 오타는 10개가 넘었고, 글씨 크기는 뒤죽박죽이었다. 나중에는 글씨 자간 자체가 컸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잘못보다는 ‘왜 이렇게 이 사람은 나를 귀찮게 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8시간이 흘렀고, 일 년에 하나뿐인 내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끝나가고 말았다. 


세종도 이런 걸 알았던 걸까. 세종 25년,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나라 사람의 습성은 더디고 느리어서,
흔히 직책을 맡고도 일에 늘쩡늘쩡하고 세월만 보내면서
겨우 죄책(罪責)이나 면하려 한다.

간혹 그 직책을 다하고자 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아무쪼록 빨리 끝내려고 힘쓰기 때문에
도리어 소란을 일으키는 폐단이 있다.

느리고 빠름이 알맞지 못하고
일 처리가 옳게 되지 못한다.”(25/2/1)


세종은 마치 내 마음을 간파한 듯 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후궁을 짓는 일 때문이었는데, 담당자들이 이 일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급하게 독촉한다는 것이다. 하복생이 목재를 빨리 수송하고자 하고, 폐단은 돌아보지 않아 소동을 일으키게 될 것이니 세종은 윤허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만 빨리 끝내려고 애써서 자꾸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한다는 것. 결국 이 일은 인부 1400여 명 중 병이 난 사람은 22명, 죽은 사람은 3명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세종은 백성들을 얼른 치료하라 명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었다.


세종이 후궁을 왜 지으려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 배울 것은 빠르게 하다가 폐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무려 25명,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문화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하니 웃음이 나오지만, 나도 하복생처럼 그러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내 고객에게 최고의 책을 선물해주겠다는 마음보다 얼른 끝내고 크리스마스를 즐겨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까지 일을 시키는 고객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오죽하면 그 날에 자신의 책을 완성해보고 싶었을까하는 마음을 헤아리니 미안하기도 하다. 오히려 솔직하게 ‘오늘은 쉬는 날이니 내일 함께 완성해보시죠’ 라거나, ‘하나씩 읽어보느라 시간이 걸리니, 찬찬히 살펴보시죠.’라고 해서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실록을 공부한 뒤로, 일을 할 때 마음 속으로 ‘다시, 다시 한 번 보자’를 끊임없이 외친다. 이렇게 급한 마음이 드는 건 일에 진심을 들이려고 한 게 아니라 해치우고 싶은 얕은 욕심이었고, 어느 누구도 급하게 처리해달라 말하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느리게 한다고 해도 남들보다 빠르긴 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사실은 실수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 일을 하면서 중요한 건 속도보다 정확성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실수로 인해서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세종이 나에게 전하는 당부가 아닐까. 

이전 07화 세종은 MBTI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