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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하연 Oct 12. 2023

세종은 MBTI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게으름의 정당화, '너 P세요?' 


“너 MBTI가 뭐야?”

요즘 유행하는 대화 주제다. 서먹한 사이를 단번에 풀어주는 마법과 같은 이 주제는 이제 단순한 대화 주제를 넘어 소개팅, 취업할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MBTI는 사람의 유형을 16가지로 나누어 대표적인 선호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검사인데, 나는 ESFP. 낙천적인 엔터테이너 유형이 나왔다. 


세종은 어떨까? 나와 정확히 반대 유형인 INTJ다. 내가 유쾌한 분위기메이커라면 세종은 타고난 전략가다. 서로 다른 성격 유형이라 끌렸던 걸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세종이 가졌으니,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P와 J, 즉 즉흥형과 계획형인 성격 차이다.


P형인 나는 즉흥적으로 일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집중력을 발휘하며, 짧은 순간에 폭발하는 몰입의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계획을 잘 지키지 않거나 마감 기한을 놓치는 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 파워 J형인 세종은 이 부분에서 철두철미하다. 세종은 정보를 얻어가면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계획을 만들고 직접 실천해보는 사람이었다.



1437년, 세종 나이 41세. 조선에 대기근이 들었다. 얼마나 비가 오지 않았는지 몇 달간 기우제를 지내도 소용이 없고, 금방 땅이 말라버리니 씨를 뿌려도 추수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 경기도에서는 스물세 명, 충청도에서 스물다섯 명이 굶어죽기까지 했다. 백성들은 나라를 탓하고, 신하들은 하늘을 탓했다. 이런 그들에게 세종은 “하늘의 운수는 비록 이와 같더라도 사람의 일은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세종실록 19/1/22) 이라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한 번은 경복궁 후원에다 밭을 갈아서 농사를 지었는데, 시기에 맞춰 파종을 하니 곡식의 양이 풍년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세종은 어떻게 했기에 성공한 게 저렇게나 많을까? 처음 실록을 읽었을 때는 세종이 J인 것이 부럽기만 했다. 나는 일을 하려고 해도 잘 안될 때가 많고, 루틴도 잘 무너지는 반면 세종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런데 이때 의문이 들었다. ‘이 세상에 모든 J들만 일을 이루어내는 것인가? P들은 그렇지 않은가?’ 하며 말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실록에서 찾았다. 


“속담에 하루가 늦어지면 10일이 늦어지고,
 10일이 늦어지면 한 해가 늦어진다고 한다.

만약 금년에 쌓을 수 없다고 하고, 명년에 또 쌓을 수 없다고 한다면,
큰일을 어느 때에 완성하겠는가." (세종 26/7/16)

이 말은 신하 중 한 명이 성 쌓는 것을 중단하자고 요청한 것에 대한 세종의 대답이다. 여기에서 그는 일을 하는 시기와 태도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하루가 늦어지면 1년이 늦어질 수 있음을 알았던 그는 백성들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시기를 놓쳐서 농사에 실패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간파했다. 


세종은 사람을 P형과 J형으로 나눈 적이 없었다. MBTI를 보고 신하를 뽑은 적도 없다. 그는 항상 그 사람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우선했고, 그들의 글과 말과 행동으로 인재들을 평가했다. 즉, P와 J의 문제가 아니라 ‘일을 완성시키는 태도’에 답이 있다는 것.


‘오늘 하루는 괜찮겠지...’ 하면서 슬금슬금 일을 미루고 있던 것들이 하나 둘씩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P라서 그래’라며 내 게으름을 정당화했건만,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마감기한의 몰입을 즐기는 것은 잠깐, 때를 놓쳐 기회가 사라지는 건 평생이지 않는가. 잠깐의 즐거움이 아닌 평생의 뿌듯함을 위하여, 나는 내 컴퓨터 모니터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하루 늦어지면 1년이 늦어진다.’ 이제는 실행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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